지난 11일 제주 서귀포시의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 골키퍼 유연수(25)가 은퇴식을 했다. 제주 유나이티드 페이스북 갈무리
지난 11일 제주 서귀포시의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제주 유나이티드와 에프시(FC)서울이 0대0의 팽팽한 접전을 펼치던 중 전반 31분이 되자 경기가 잠시 중단됐다. 축구장에 모인 팬들은 한목소리로 한사람의 이름을 외쳤다. 그 주인공은 2020년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골키퍼 유연수(25)였다. 구단이 이날 유연수의 은퇴식에 앞서 그의 등 번호 31번을 기억하기 위해 전반 31분께 특별한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구단 관계자는 “전반 31분 제주 유나이티드의 31번 유연수 선수의 은퇴를 맞아 유연수 선수의 미래를 응원하는 박수 응원에 동참해달라”고 안내했다. 팬들은 그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관중석 상단에 있던 유연수는 박수로 팬들에게 화답했다.
어느덧 전반전이 끝나고 은퇴식을 위해 유연수가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음주운전 차량에 피해를 입은 이후) 1년 동안 정말 힘들었는데 팬들의 문자나 메시지를 보면서 버틸 수 있던 것 같다. 너무 감사하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유연수는 마지막으로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원정팀 팬들도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경기를 중계하던 강성주 해설위원은 “(유연수가) 사고를 당해, 음주운전 가해자에 의해 선수 생활을 더 할 수 없게 됐다. 참 황망하고 가슴 아픈 일”이라며 “지금까지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열정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그를 응원했다. 팬들과 인사를 마친 유연수를 그를 기다리던 동료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경기장을 뒤로했다.
음주운전 차량과의 교통사고는 장래가 촉망됐던 유연수의 선수 생활을 180도 뒤바꿨다. 유연수는 지난해 10월18일 아침 5시40분께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의 한 사거리에서 동료 선수, 트레이너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크게 다쳤다. 당시 음주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치(0.08% 이상)를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가해자에 대한 1심 재판은 아직 진행중이다.
이 사고로 유연수는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한창인 25살에 더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된 그는 13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골키퍼 장갑을 벗었다.
지난 11일 제주 서귀포시의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 골키퍼 유연수(25)가 은퇴식을 했다. 제주 유나이티드 페이스북 갈무리
유연수는 12일 구단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초반에는 못 걷는다, 축구도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힘들고 슬펐다”면서도 “저 혼자가 아니었다. 항상 주변에는 가족도 있고 친구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포기하면 저만 손해고 굳이 이걸(축구를) 안 해도 다른 기회가 열려 있고 다양한 게 있다”고 말했다.
유연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바로 패럴림픽 선수다. 그는 “저도 계속 (재활을) 할 생각이고 포기 안 하고 다른 거 하면서 재활을 병행하려는 생각이 있다”고 다짐했다. 그는 13일 제이티비시(JTBC)와의 인터뷰에서 “축구선수가 아닌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유연수라는 사람을 패럴림픽이든 패럴림픽이 아니든 그냥 제 이름만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며 “‘유연수 선수가 축구선수였지’(라고) 지나가다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제주 서귀포시의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 골키퍼 유연수(25)가 은퇴식을 했다. 제주 유나이티드 페이스북 갈무리
누리꾼들은 유연수의 앞날을 응원했다. 누리꾼들은 “용기 잃지 말고 꼭 재활 잘 받아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슬프고 가슴 아픈 사람은 그일 텐데 끝까지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줘 깊은 감명을 받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일부 누리꾼들은 음주운전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터트렸다. 누리꾼들은 “음주운전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쳤다” “음주운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한잔이라도 마셨다면 운전하지 않는 문화가 생기길 바란다” 등 음주운전이 근절돼야 한다고 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