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저녁 7시 20분부터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공동투쟁)은 서울 종로구 디엘이앤씨(DL E&C) 본사 앞에서 전태일 열사 53주기 전국노동자대회를 하루 앞두고 전야제를 열고 있다. 김채운 기자
“어디까지 이 목숨을 던져야 할지. 이제 그만 죽게 해야 합니다. 이제 그만 죽어야 합니다.”
10일 저녁 7시20분부터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공동투쟁)은 서울 종로구 디엘이앤씨(DL E&C) 본사 앞에서 전태일 열사 53주기 전국노동자대회를 하루 앞두고 전야제를 열었다.
이날 사회를 본 김태은 하나생명지회장은 전야제를 시작하면서 “1970년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2023년 택시 노동자 방영환 열사의 체불임금 달라는 외침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고 강보경 디엘이앤씨 하청노동자는 공학박사를 꿈꾸는 청년이었지만 이편한세상을 짓는 첫날에 건물 6층서 추락했다”며 “전태일 열사 53주기 맞이했으나 노동자 삶은 안 바뀌었다. 오늘은 전국노동자 전야제를 이곳에서 동지 여러분의 행진으로 지금 시작한다”고 외쳤다.
차헌호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소집권자(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도 “기계 취급받고 쓰다 버리는 일회용품 취급받는 비정규직, 이 시대의 전태일들이 여기 모였다”며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은 1100만 비정규직 목숨이 걸렸다는 마음으로 5년 동안 싸웠다. 앞으로 더 어려운 처지의 소외된 동지들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기온이 영하 가까이 떨어진 강추위 속에 100여명의 비정규직 노조원들은 패딩과 침낭으로 무장을 하고 방한을 위해 거리에 깔아둔 은색 돗자리 위에서 2시간 넘게 야간문화제를 이어갔다. 주최 쪽에서 핫팩과 커피를 나눠줬지만, 칼바람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밤 9시50분 이후부터는 은색 돗자리를 따라 30여명의 참여자들이 1인 1텐트를 펴고 ‘노숙집회’에 돌입했다. 오수일(51)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해고노동자)은 “9년차 해고노동자 당사자인데, 정권에 상관없이 노동자들의 요구는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는 것 같다”며 “할 수 있는 게 이렇게 몸을 희생해서 목소리 내는 수밖에 없어 (노숙집회까지 참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에서 온 정원현(56)씨도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매년 전야제를 해왔다. 내일 전국노동자대회 전에 힘을 모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참여했다”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이 사회 발전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0일 저녁 9시 50분 이후부터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공동투쟁)은 서울 종로구 디엘이앤씨(DL E&C) 본사 앞에서 ‘노숙집회’에 돌입했다. 김채운 기자
앞서 시민단체에서 심야 노숙집회 금지 처분 집행을 정지해달라며 경찰을 상대로 집행정지신청을 내면서 이날 노숙집회 과정에서 강제 해산 우려가 있었지만, 주최 쪽과 경찰 간 마찰은 없었다.
지난달 18일 디엘이앤씨 산재사망대책위 쪽은 이달 6일부터 17일까지 100여명이 참석하는 ‘디엘이앤씨 산재사망 규탄대회’를 서대문역 3·4번 출구 일대에서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12일 동안 해당 장소에서 24시간 집회를 열고, 특히 10∼11일 이틀간 1박2일 전야제를 개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종로경찰서는 집회·노숙 과정에서 공공안녕 질서에 위협을 끼칠 것을 우려해 11일 오전 0시부터 6시까지의 집회를 금지하는 부분금지 통고를 한 바 있다.
이에 법원은 “이 사건 노숙집회가 전면적으로 금지되는 경우에는 집단적 의사 표현의 자유인 집회의 자유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허용 범위’ 내에서 옥외집회 금지 통고 처분취소 사건의 판결 선고 시까지 그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다음날인 11일에는 서울 도심에서 양대 노총의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는 11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역 및 독립문 일대에서 ‘노동자대회 및 민중총궐기’ 집회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같은 날 오후 1시부터 여의도에서 별도로 ‘노동자대회’를 연다. 경찰에 신고된 집회 인원은 민주노총 3만5000명, 한국노총 2만명이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김채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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