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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가 시세보다 저렴해 ‘로또 분양’으로 불리며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던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에서 1690채 중 1채만 계약이 되지 않았고, 이후 이 집은 건설사가 속한 그룹 최고위급 인사에게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임의 분양을 통해 최고위급 인사에게 넘어간 집은 전용면적 176㎡로 최소 10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이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정부는 건설사들의 미분양 주택 임의 분양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였다.
8일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한겨레가 취재한 결과, 현대건설이 2018년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자이개포 아파트를 분양할 때 ‘1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펜트하우스(전용면적 176㎡) 1채가 미계약됐고, 이후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 소속 ㄱ사장에게 넘어갔다. 기조실은 현대차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곳으로 ㄱ사장은 정의선 회장의 핵심 참모로 평가받는 인사다.
당시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고분양가를 규제하는 등 사실상의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한 때로, 이 아파트 역시 3.3㎡당 평균 분양가가 인근 시세(5천만원대)보다 저렴한 4160만원으로 책정됐다. 로또 분양으로 불리며 2018년 상반기 분양시장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이유다.
해당 펜트하우스는 분양가 30억6500만원으로 강남권 주요 단지의 중소형 평형 시세(20억원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해 인기가 많았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자는 한겨레에 “근처에 있는 비슷한 평수의 펜트하우스가 최근 70억원에 거래됐다. 34평도 분양 가격이 14억원이었는데 최근 30억원에 거래됐으니 거의 전 세대가 분양가 대비 2배 이상 올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6 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에도 해당 주택이 미계약된 배경에는 당시 주택공급 규칙의 허점이 자리잡고 있다. ㄱ사장이 아파트 소유권을 획득한 2018년 11월 당시 규정은 ‘당첨자 대비 최소 40%(국토부 권고 80%) 이상을 예비입주자로 두고, 당첨자가 포기하면 예비입주자 중에서 입주자를 선정하되, 그래도 실패하면 건설사가 정한 방법으로 분양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규정에 따라 현대건설은 ‘1채의 80%=0.8명’이므로 예비입주자를 1명 선정했다. 당첨자 1인과, 예비입주자 1인이 대출규제로 잔금 마련이 어려운 이유 등으로 계약을 포기하자 ‘16 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의 물건은 합법적으로 미분양 물건이 됐고, 이후 임의 분양됐다.
문제는 막대한 시세차익이 사실상 보장된 아파트가 그룹 계열사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조실 소속 사장에게 돌아갔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경찰은 배임수재 혐의가 성립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현대건설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1년 가까이 입건 전 조사(내사)를 벌여오기도 했다.
‘임의 분양’은 당시에도 문제로 인식됐다. 국토교통부는 ㄱ사장에게 소유권이 넘어가(2018년 11월)기 한달 전인 2018년 10월 임의 분양을 금지하는 내용의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 규칙은 2018년 12월 시행돼 이후 분양되는 단지부터 적용됐다.
국토부는 2017년에도 지방자치단체나 주택협회 등에 “(미분양 물량 분양 방식을) 사업 주체가 따로 정하는 경우에도 공정한 방법으로 접수, 추첨하는 등 객관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주택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필요한 행정조치를 하라”는 업무협조문을 내린 바 있다.
현대차그룹 쪽은 “공개 추가 모집도 검토했으나 주택시장을 자극할 것 같아 (현대건설이) 포기했다. 이후 현대건설 사외이사들에게 넘기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문제 소지가 있을 것 같아 진행하지 않았다”며 “마침 ㄱ사장이 집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현대건설 관계자가 개인적으로 제안해 거래가 이뤄졌다. 당시 관행이었고, 법률 검토 결과 ㄱ사장의 당시 기조실에서의 업무가 현대건설과 직접 관련이 없어 문제없다는 판단이 나와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런 경우 통상 관심 고객에게 선착순 분양한다. 임의 분양은 최후의 수단이다”라며 “회사 쪽 인사에게 넘기면 말이 나오기 때문에 잘 쓰지 않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은 “다수의 일반에게 공정한 기회가 돌아가도록 만들어진 청약제도의 취지를 무력화하는 편법”이라며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온 인기 주택을 특정인에게 분양해 사실상의 특혜를 준 것으로 공정하지 않은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