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개인 명의 보도자료를 인권위 양식을 빌려 배포하자, 인권위 사무처가 ‘규정상 근거가 없는 행위’라는 입장을 밝혔다.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인권위 사무처로부터 제출받은 서면 답변서를 보면, 인권위는 “상임위원 명의로 국가인권위원회 로고 및 양식 등이 적용된 보도자료 배포에 관한 법령 및 규정 등의 근거가 없다”고 답했다.
인권위 보도자료 배포는 △인권위 위임·전결 규정 △언론홍보 매뉴얼 △보도자료 작성 배포 매뉴얼에 따라 이뤄지는데, 규정을 보면 보도자료 발표 및 배포는 사무처 홍보협력과 과장의 전결로 처리된다. 이러한 절차를 건너뛰고 상임위원이 자의적으로 보도자료를 낼 수 있는 권한은 규정돼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김용원 상임위원은 지난 8월 24일 ‘해병대 수사단장 긴급구제 안건 심리를 위한 상임위원회 개최 불발 사건에 관한 입장문’이라는 이름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인권위 상임위원 명의로, 인권위 보도자료 양식을 빌려, 인권위 출입 등록 매체에 보도자료를 배포한 첫 사례다.
당시 김 위원은 고 채상병 사망사건 관련 항명죄 수사를 받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긴급구제 안건을 논의할 상임위원회에 의도적으로 불참해 안건을 무산시킨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보도자료에는 이런 의혹에 대한 김 위원의 반박문이 담겨있다. 김 위원이 이런 식으로 현재까지 배포한 보도자료만 8건에 달한다. 김 위원이 인권위 보도자료 양식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이미 배포된 공식 보도자료를 읽어주는 시각장애인용 큐알코드가 엉뚱하게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인권위와 구조가 유사한 다른 합의제 행정기관에서 김 위원과 같이 개별 위원이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일은 흔치 않다. 국민권익위원회와 최고의사결정기구로 감사위원회를 두고 있는 감사원 등 다른 기관들도 통상적으로 사무처(홍보과·대변인실)를 통해 기관장이나 사무총장의 결재를 받아 보도자료를 낸다. 기관의 보도자료 양식, 로고 등이 적시되면 기관의 공식 입장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사무처를 거치지 않을 경우 출입 기자들의 이메일 주소 등이 무단으로 반출될 위험도 있다. 앞서 김 위원 면담을 위해 인권위를 항의방문한 군 사망사고 유족들도 김 위원이 개인명의로 뿌리는 보도자료가 적법한 것이냐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박주민 의원은 “상임위원 보도자료는 한 마디로 무단으로 전재, 수정 배포한 가짜문서”라며 “권한 밖, 상식 밖 행위들로 인권위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키고 있는 사람이 인권위 상임위원이라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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