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펴낸 참고자료
시나리오 딱 들어맞아
시나리오 딱 들어맞아
김재록씨 수사 과정에서 현대·기아차 그룹의 편법적인 그룹 상속이 새삼 조명되는 가운데, 이를 모델로 한 듯한 검찰 내부 수사참고 자료가 발간됐던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끌고 있다.
2004년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이 펴낸 ‘증권사범수사실무’의 2편 7장 ‘비상장주식의 평가 문제’ 부분을 보면, 어느 대기업 총수는 자신의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방안을 마련하도록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에게 지시한다. 구조조정본부장은 이에 따라 5단계에 걸친 ‘비법’을 마련해 그룹 회장에 보고한다.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①계열사를 동원해 회장 아들이 소유한 비상장 기업의 주식을 비싼 값에 사준다. ②계열사가 소유한 저평가 우량기업의 비상장 주식을 싼값에 회장 아들에게 넘긴다. ③수천억원을 마련한 그룹 회장 아들은 이 돈으로 모기업에 대한 주식을 매집해 지분을 늘린다. ④계열사 해외 지사를 통해 해외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려 국내로 들여와 회장 아들에게 넘기고 모기업 주식을 매집하게 한다. 해외에서 빌린 돈은 적절한 시기에 계열사가 해외투자 과정중에 손실을 본 것으로 처리한다. ⑤모기업과 연관되는 분야에 회장 아들이 지분을 100% 소유한 기업을 세우고 계열사를 동원해 이 회사를 집중지원, 우량 회사로 만든다. 이 회사는 모기업과 유리한 조건으로 합병하게 되고, 회장 아들은 안정적인 모기업 주식을 확보하게 된다.’
여기서 다섯번째로 언급된, 관련 회사를 세우고 계열사를 통한 밀어주기 영업은 현대차 그룹의 경영권 승계 방식으로 지목돼 왔다. 글로비스와 엠코가 그룹의 물류와 건설 부분을 독점하면서 대주주인 정의선씨가 수천억~1조원 가량의 이익을 거둔 것이다.
이 책자를 펴낸 이인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재벌들이 편법으로 경영권을 넘기는 것을 가정했을 뿐, 현대 그룹을 염두에 두고 집필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만약에 이런 일이 사실일 경우엔 배임 또는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차장은 2003년 서울중앙지검 형사 9부장으로 재직하며 수조원대에 이르는 에스케이그룹 비자금 수사를 담당해 기업 수사통으로 이름을 날린 바 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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