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영국 힐즈버러 인파사고 생존자의 편지…“재난 뒤 사회적 지지를”

등록 2023-10-30 07:00수정 2023-10-30 10:24

지난 2019년 재난 피해자 지원 및 권리 강화를 위한 국제포럼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앤 에이어(59·Anne Eyre) 박사. 4·16재단 제공
지난 2019년 재난 피해자 지원 및 권리 강화를 위한 국제포럼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앤 에이어(59·Anne Eyre) 박사. 4·16재단 제공

“이태원 1주기를 맞아 깊은 슬픔에 빠진 지금, 전세계 곳곳에서 저와 같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생각하고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영국 재난참사 피해자 연대 ‘참사행동’(Disaster Action)에서 활동하는 앤 에어(59) 박사가 29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생존자와 한국 시민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사회학자인 에어 박사는 25살이던 1989년 4월, 영국 셰필드 힐즈버러 경기장에서 축구팬 97명이 압사하고 760명 이상이 다친 ‘힐즈버러 참사’에서 살아남은 뒤 재난 관리 전문가가 됐다.

에어 박사는 한국 시민들에게 “(유족 및 생존자들이) 타인의 보살핌을 비롯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등 사회적 지지를 받는 것은 재난 후 심리적 안녕에 큰 차이를 만든다”며 “특히 참사 1주기와 같은 기념일에는 이런 ‘기본’에 집중해달라”고 당부했다.

에어 박사의 편지는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은 이날 4·16재단을 통해 한겨레에 전달됐다. 에어 박사는 이태원 참사로 큰 상처를 입은 유가족·생존자와 한국 시민들에게 위로와 연대의 말과 함께 심리적 트라우마를 관리할 방법까지 조언했다.

에어 박사는 자신이 34년 전 느꼈던 충격과 정부의 잘못된 대처가 이태원 참사에서도 반복됐다고 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는 힐즈버러 때처럼 제한된 공간에 매우 많은 사람이 밀집된 상황에서 군중 관리에 실패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이라며 “이후 당국과 그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책임이 없는데도 우리를 비난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책임을 전가했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고통의 장면에 둘러싸여 있을 때, 사방에 공포가 펼쳐졌을 때, 삶과 죽음의 차이가 너무나 무작위였을 때, 다른 사람을 구했어야 했다고 느낄 때 죄책감이 들고, 그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 일을 통제하지 못한 것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감정과 생각을 회피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 트라우마 치유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에어 박사는 “힐즈버러 참사 발생 후 지금까지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일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 됐다”며 “스스로 준비됐고 말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되,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했다.

끝으로 에어 박사는 일반 시민들을 향해 “치료사들도 도움을 줬지만, 장기적으로 저 스스로 죄책감을 이해하고 재난의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 묻는 일을 하도록 한 것은 대부분 ‘동료’였다”며 “이는 영국 모든 공직자에게 솔직함, 진실, 책임에 대한 법적 의무를 요구하는 법안(힐즈버러법)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이어 “비극을 이해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며 “이는 치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에어 박사는 유가족·생존자들을 위한 트라우마 관리 지침문도 같이 보냈다. 이를 기사와 함께 싣는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팁들과 제안들입니다. 그리고 트라우마 전문가의 조언을 박스 안에 담았습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한 전문가는 당신이에요. 무엇이 여러분에게 가장 좋을지는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 당신에게 힘이 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락을 유지하고, 자신에게 시간과 아낌없는 애정 어린 보살핌을 줍니다.

• 추모 활동과 의식에 참여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공개적으로 공유할 것인지, 사적인 방법을 통해 참여할 것인지 결정하세요. 많은 사람은 의식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 도움된다고 생각하지만 이에 대한 선택권과 통제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은 기념일이 다가올 때 특히 불안한 시간으로 느낄 수 있지만, 기념일이 지나고 나면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고 해소할 수 있도록 애써주세요. 일기 쓰기, 대화하기, 운동하기는 우리 몸이 스트레스를 소화하고 감정이 쌓이는 것을 피할 수 있게 하는 모든 방법입니다

• 여러분의 사적인 생각과 감정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사람이나 필요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 (다른 재난의 생존자)와 대화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의 지원과 이해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 이미지, 뉴스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길 바랍니다. 지금 소셜 미디어를 보는 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 스스로 물어보세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잠시 쉬시길 바랍니다.

• 사람들이 화를 내는 걸 이해해주세요. 여러분도 그럴 수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지고, 도무지 일할 수 없는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 모든 감정을 다 이해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슬픔과 트라우마가 작동하는 방식일 뿐이에요.

• 분노와 슬픔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분노는 회복력을 유지하고 필요한 일에 집중할 에너지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커지거나 견딜 수 없어지면 도움을 요청하세요.

이런 것들이 왜 중요할까요?

1) 여러분은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았고, 이태원과 또 다른 참사들에 책임이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생존자의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도 있습니다.)

2) 감정이 정리되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됩니다. (이태원의 진실과 정의를 찾는 일을 포함해서) 그러나 소중한 자신을 희생하면서 활동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이재명 ‘선거법 위반’ 1심 징역 1년에 집유 2년...의원직 상실형 1.

이재명 ‘선거법 위반’ 1심 징역 1년에 집유 2년...의원직 상실형

[영상] 윤 ‘부적절 골프 의혹’ 골프장 직원 신상, 경찰 ‘영장 없이 사찰’ 논란 2.

[영상] 윤 ‘부적절 골프 의혹’ 골프장 직원 신상, 경찰 ‘영장 없이 사찰’ 논란

이재명 ‘중형’ 듣자마자 지지자 기절…구급대도 출동 3.

이재명 ‘중형’ 듣자마자 지지자 기절…구급대도 출동

찬성 272명 vs 반대 이준석…‘딥페이크 위장수사 확대’ 국회 표결 4.

찬성 272명 vs 반대 이준석…‘딥페이크 위장수사 확대’ 국회 표결

“사법부 탄핵” “판결 무효”…법정 밖 이재명 지지자 격앙 5.

“사법부 탄핵” “판결 무효”…법정 밖 이재명 지지자 격앙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