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청사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못하다.’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밝힌 이유다. 직장 내 상하관계는 물론 성폭력이 남성에겐 성적 공격성을 허용하고 여성에겐 수동적인 태도를 요구하는 성역할 규범에서 비롯된다는 점 등을 다양하게 고려하지 않아 가해자에게 관대한 판결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성폭력 가해자의 유무죄를 제대로 판단하고 피해자의 회복적 사법을 위해서는 재판부가 ‘성인지 감수성’을 갖춰야 하지만, 법관 2명 중 1명은 ‘성인지 의무교육’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6일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은 ‘경력별 법관 성인지 교육 참여 현황’ 자료를 보면, 최근 5년 동안 법관들의 성인지 교육 참여율은 2018년 44 .5 %, 2019년 40 .5%)를 보이다가 코로나19가 유행하던 2020년 35.8%로 가장 낮아졌다. 이 비율은 2021년 53.3%, 2022년 51.8% 수준을 보이다가, 올해(1~7월) 53.6%로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절반 수준에 그쳤다.
합의부에서 사건의 법리 해석 방향을 잡는 부장판사(경력 15년 차 이상)의 성인지 교육 참여율은 더 낮다. 2018년 43.1%, 2019년 43.9%, 2020년 26.0%, 2021년 58.1%, 2022년 42.1%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사법연수원은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법원 경력 5년 이상 법관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성인지 교육을 실시 중이다. 해당 교육에서 ‘양성평등을 넘어서-다양성, 조화로운 사회’ ‘법관으로서 갖춰야 할 균형 잡인 성평등 의식’ ‘법관, 그 소명의식으로부터의 성평등’ ‘법관의 균형 잡힌 성인지를 위하여' ‘재판과 젠더’ 등을 배운다.
법원행정처는 교육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에 대해 “경력별 법관 성인지 교육은 통상 2개년에 걸쳐 진행해 (참여율이) 구조적으로 50% 안팎”이라며 “(법률에 따라 매년 실시해야 하는 의무교육인) ‘4대 폭력 예방교육’과 성인지 교육을 통합해 시행해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현행법에는 4대 폭력 예방교육과 성인지 교육을 통합해 실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법원행정처는 이런 사실을 지적하자 “올해는 4대 폭력 예방교육과 별개로 법관 포함 전국 법원 전 직원을 대상으로 별도의 성인지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법관들의 성인지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성폭력(강간·강제추행) 사건은 다른 일반 형사사건보다 1심 무죄율이 높다”며 “여성을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불평등한 관계에서 성폭력과 같은 젠더 폭력이 발생하는데, 판사들이 이런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성인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도 2018년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이탄희 의원은 “판사가 성인지 감수성을 가져야 피고인에게만 과몰입하지 않고 피해자의 입장도 함께 고려할 수 있다”면서 “판사들이 성인지 감수성을 기를 수 있도록 참여율은 물론 교육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방안을 법원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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