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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군 내무반 생활이 동성 성행위 키운다? 헌법재판관의 무지와 편견

등록 2023-10-26 18:56수정 2023-10-26 19:49

헌재, ‘성소수자 군인 처벌’ 군형법 추행죄 조항 또 합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들이 2019년 10월1일 제71회 국군의 날을 맞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차별국군’ 선포 국제 행동의 날 기자회견을 하며 침묵 속에 복무 중인 군인들을 상징하는 엑스(X)자 표시가 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들은 군형법 제92조의6이 성소수자 군인을 처벌의 위협으로 내몰고 있다며 이 조항의 폐지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들이 2019년 10월1일 제71회 국군의 날을 맞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차별국군’ 선포 국제 행동의 날 기자회견을 하며 침묵 속에 복무 중인 군인들을 상징하는 엑스(X)자 표시가 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들은 군형법 제92조의6이 성소수자 군인을 처벌의 위협으로 내몰고 있다며 이 조항의 폐지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합의된 동성 군인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추행죄’ 조항이 헌법재판소의 네 번째 심판에서도 ‘합헌’ 판단을 받았다. 지난해 대법원 판례변경으로 사적 공간에서 합의로 이뤄진 성행위에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기로 한 이상 위헌은 아니라는 논리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 사회의 꾸준한 폐지 권고에도 헌재가 성소수자 차별 조항을 용인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6일 헌재는 군형법 92조의6(추행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판결이 확정된 당사자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은 재판의 전제성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각하했다.

군형법 추행죄는 군인 등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한다. 1962년 제정 때는 “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처벌하는 내용이었는데, 2013년 ‘계간’을 ‘항문성교’로 표현만 바꾸어 유지됐다. 법문상으로는 행위자의 성별을 가리지 않고 항문성교를 한 군인을 처벌하는 내용이지만, 실제로는 합의 여부, 시기 및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성 군인간 성적 행위에만 적용됐다.

군형법에 ‘폭행·협박으로 군인 등을 추행한 사람은 1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강제추행죄(92조의3)가 따로 생겨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었지만, 2017년 육군 중앙수사단은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한 뒤 이 조항을 적용해 23명을 입건했다. 이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4월 ‘사적 공간에서 합의로 이뤄진 동성 군인간 성행위에는 군형법 추행죄를 적용할 수 없다’며 14년 전 판례를 뒤집었다.

헌재 법정의견(5명)은 대법 판례변경을 핑계 삼아 이 조항을 합헌 판단했다. 동성 군인간 합의로 근무지 또는 임무수행 중에 성적 행위를 하면 처벌해야 하는데, 이 조항을 위헌 판단하면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다.

2018년 5월12일 국제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5월17일, IDAHOTB - the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을 닷새 앞두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군형법 92조 6항 삭제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깃발과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5월12일 국제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5월17일, IDAHOTB - the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을 닷새 앞두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군형법 92조 6항 삭제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깃발과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는 ‘근무지 또는 임무수행 중’ 이성 간 성행위는 형사처벌하지 않으면서, 동성 간 성행위만 형사처벌하는 점에 대해서도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다. 헌재는 절대다수의 군 병력이 남성인 점, 젊은 남성 군인들이 장기간의 폐쇄적인 단체생활을 하는 점을 들어 일반 사회와 비교해 동성 군인 사이에 성적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사실상 헌재가 성적 지향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에 기반해 ‘평등원칙 위배 여부’를 판단한 셈이다.

이날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위헌의견을 냈다. 이들은 “추행은 피해자 의사에 반하여 이뤄지는 행위인데, 동성 군인간 자발적 의사 합치가 있었다면 사적 공간이 아닌 곳에서 이뤄진 성적 행위라도 더는 ‘추행’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며 “이 조항은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포괄적 용어만 사용해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 법 해석 가능성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김기영·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별도의견으로 “군기라는 추상적 공익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어떠한 강제력도 수반하지 않는 성적 행위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개인의 내밀한 성적 지향에 심대한 제약을 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형법 추행죄가 헌재 심판대에 오른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헌재는 2002년, 2011년, 2016년 세 차례에 걸쳐 군형법 추행죄가 합헌이라 결정했다. 2016년에도 ‘위헌 의견’ 재판관은 4명으로 위헌 결정 정족수(6명)를 채우지 못했다. 헌재는 7년만에 군형법 추행죄를 다시 심판대에 올렸지만 ‘위헌 의견 4명’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시민사회는 차별을 용인한 헌재의 퇴행적 결정을 규탄했다. 군인권센터는 성명을 통해 “2017년 육군의 성소수자 군인 색출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 이 법은 언제든 악용돼 많은 성소수자 군인들을 성적 지향을 이유로 괴롭힐 수 있다”며 “재판관들은 추행죄가 군 내 동성 간 성폭력 피해자를 지키기 위해 존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는 피해자를 옥죄고 처벌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법이 어떻게 운용되는지도 알아보지 않고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퇴행적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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