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박 교수는 2013년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등으로 표현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책 출간 10년, 기소된 지 8년만에 나온 판단이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6일 형법의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에서 유죄로 인정한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이나 의견으로 평가해야 하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며 “(박 교수의 책이) 통상의 연구윤리를 위반했거나 피해자의 자기결정권이나 사생활 비밀의 자유 등을 침해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다’, ‘일본 제국에 의한 강제 연행은 없었다’ 등의 취지로 기술된 대목을 문제 삼아 박씨를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15년 12월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문제 삼은 35곳 중 30곳은 박 교수 개인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고 봤다. 사실적시로 판단한 나머지 5곳도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무죄로 봤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는 “박 교수가 위안부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해 조선인 위안부의 강제 동원 및 일본군 관여 사실을 알면서도 허위 사실을 단정적으로 표현했다”면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학문적 표현물에 관한 평가는 형사 처벌에 의하기보다 원칙적으로 공개적 토론과 비판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학문적 표현물로 인한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성립 판단 시 (의견이 아닌)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는 데에는 신중하여야 한다는 법리를 최초로 설시(판결문에 담다)했다”고 판결 의의를 설명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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