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서울대 인권헌장 학생추진위원회가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서울대 인권헌장’ 지지서명 전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대가 국내 대학 최초로 ‘대학원생, 노동자, 성소수자 등 학내 구성원은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내용을 명시한 ‘인권헌장’ 제정을 혐오 목소리를 이유로 3년간 뭉개고 공식 논의 절차를 전혀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서울대는 지난 2020년 ‘서울대 인권헌장’ 안을 마련한 뒤 단 한 차례도 평의원회, 이사회 등 공식 논의기구에서 제정 논의를 하지 않았다. 서울대는 “절차 진행 중 쟁점 조항(차별금지와 평등권)에 대한 이견이 있어 절차상 최종 심의 기관인 평의원회와 이사회에서는 관련 사항에 대해 논의된 바가 없다”고 답했다.
‘서울대 인권헌장’은 지난 2020년 서울대 인권센터가 학내 공청회 등을 거쳐 발표한 것으로, ‘대학원생, 노동자, 성소수자 등 학내 구성원은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국내 대학 중 이런 내용을 담은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한 헌장을 공식 제정하려고 논의한 것은 처음이었다.
서울대가 말하는 ‘이견’이란 보수기독교 단체 등의 성소수자 혐오 목소리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제정 논의 당시 기독교 근본주의를 표방한 서울대 내 우파 학생단체 트루스포럼 등은 교내에 ‘서울대 인권헌장 및 대학원생 인권지침 제정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를 붙이는 등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냈다. 서울대는 “학내 구성원 간 상당한 의견 차이가 있다”며 “(인권헌장의) 규범화는 학내 구성원의 논의와 공감대 형성을 통한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서울대 인권헌장에 대한 미래세대 인식조사 연구’ 등에서 학내 구성원들의 개별 조항 및 인권헌장 필요성에 대한 동의 수준이 높게 나타난 만큼 제정 절차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서울대 다양성위원회는 인권헌장에 대한 서울대 구성원의 찬성률은 76.5%라고 밝힌 바 있다. 해당 조사는 서울대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해 5363명이 응답했다.
서동용 의원은 “인권헌장 제정에 대한 연구진, 학생 등 구성원들의 동의 수준은 이미 높은 상황”이라며 “이제 중요한 것은 학교의 적극적 의지이다. 오랜 숙의를 거친 만큼 이제는 서울대가 인권헌장 제정의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 관악구에 있는 서울대학교 정문. 한겨레자료 사진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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