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2차 촛불행진 준비위원회’와 ‘문중원 열사 2·22희망버스 기획단’이 2020년 2월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죽음을 멈추는 2.22 희망버스 출발 및 종합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올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사망 이유가 적힌 영정손팻말을 들었다. 사진은 다중노출 기법을 이용해 찍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산업재해 사망 사고에서 근로복지공단이 유족보상일시금을 100% 지급했다고 해서 유족들이 연금을 받을 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유족의 안정적인 생계를 위한 유족연금을 더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지하철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ㄱ씨는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지하 정거장 방수작업이 잘 이뤄졌는지를 살피던 가운데 머리 위로 떨어진 파이프를 맞아서다. ㄱ씨의 자녀들은 2019년에 일어난 산업재해와 관련해 회사로부터 3억3000만원의 손해배상금 등을 받기로 합의했다. 회사 쪽은 ㄱ씨의 배우자와 자녀에게 3억3000만원의 손해배상금 지급을 마친 뒤인 2019년 12월10일께 공단에 자신들이 미리 지급한 배상금을 산재보험(유족보상일시금)으로 지급해달라는 취지의 서류를 제출했다. 이에 공단은 ㄱ씨의 유족보상일시금을 100%(평균 임금의 1300일 치)로 계산한 2억5623만원을 회사로 지급했다.
이후 ㄱ씨의 배우자는 공단에 유족연금도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회사 쪽에 유족보상일시금을 모두 줬다는 이유로 ㄱ씨의 배우자가 유족연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전달했다. 이에 ㄱ씨의 배우자는 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정희)는 지난 8월29일 원고인 ㄱ씨의 배우자의 손을 들어줬다.
문제는 공단이 유족보상일시금을 100%로 계산해 지급한데서 발생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보면 산재 사망의 경우 유족연금을 받을 자격이 있는 수급권자가 없을 때만 공단이 유족보상일시금 100%(평균 임금의 1300일 치)를 유족에게 지급할 수 있다. 수급자가 있는 경우는 일시금의 한도는 전체의 50%를 넘지 못하고 나머지 50%는 유족연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일시금의 경우 금방 소진될 수 있기 때문에 유족의 안정적 생계를 위해 연금 수령을 제도적으로 강제한 것이다. ㄱ씨의 경우 배우자 등이 수급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법원도 이같은 법의 취지를 고려해 산재 사망 노동자의 유족이 유족보상일시금을 모두 받았더라도 유족급여를 청구할 권리가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산재 사망의 경우 연금 수급권자가 있다면 회사가 공단을 대신해 지급할 수 있는 유족보상일시금은 전체의 50%를 초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ㄱ씨가 사업주로부터 합의를 통해 받은 손해배상금이 유족보상일시금을 초과하기 때문에 유족보상연금수급권도 소멸했다고 전제하는 (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또 이미 100% 지급된 유족보상일시금 중 유족연금 지급분만큼을 반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수급자와 사이에 일시금 전부를 대위수령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여 합의를 하였다면 이를 증명하여 유족 측을 상대로 반환 등을 구하여야 할 것으로 보일 뿐”이라며 별도의 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놓았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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