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모두 국내에 두고 베트남에 홀로 머물면서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 한국에 세금 낼 의무가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조세협정은 “더 중대한 이해관계”가 있는 곳을 거주지국으로 삼기 때문이다.
지난 8월2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순열)는 가족이 국내에 거주하는 동안 혼자 베트남에 머물며 사업을 하는 ㄱ씨가 서울 양천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종합소득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ㄱ씨는 2013년 베트남에 페인트·니스 유통회사를 세우고 2016년부터 베트남으로 홀로 이주해 사업을 확장했다. ㄱ씨의 베트남 회사는 2018년 무렵 매출 68억원, 자산 총액 31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국내 사업장은 부동산임대업으로 종목 변경한 뒤 월 80만원 상당의 상가 임대수입을 얻다가 2019년 폐업했다.
ㄱ씨는 2017년 5월과 2018년 11월 두 차례에 걸쳐 회사로부터 받은 배당소득 5억4천여만원을 국내 계좌로 송금했고, 배당금은 ㄱ씨의 국내 부채 상환과 가족 생활비로 쓰였다. ㄱ씨는 베트남 당국에 세금을 납부했고, 국내에선 종합소득세를 신고·납부하지 않았다. 한국 소득세법과 베트남 개인소득세법 모두 국내에 주소를 뒀거나 1년에 절반 이상을 국내에 머문 사람을 ‘거주자’로 보고 납세 의무를 부여하는데 ㄱ씨는 2017년 103일, 2018년 84일만 국내 체류하고 나머지는 베트남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양천세무서는 2020년 ㄱ씨에게 2017∼2018년 귀속 종합소득세 1억9천여만원을 부과했다. 조세심판원에 낸 심판 청구가 기각된 ㄱ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ㄱ씨가 베트남 사업을 시작하고도 국내 아파트에 주민등록을 유지해온 점,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이 국내 체류한 점 등을 고려하면 1년에 절반 이상을 베트남에 체류했더라도 한국과 베트남 거주자에 모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ㄱ씨의 최종 ‘거주지국’은 베트남으로 봤다. 한국과 베트남이 맺은 조세협정 4조 2항은 양 국가 모두의 거주자인 경우 인적·경제적 관계가 더욱 밀접한 국가를 거주지국으로 판단한다고 정하고 있다. 법원은 “ㄱ씨는 2016년 말 베트남에서 회사를 본격 경영하기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베트남에서 보냈고, 베트남은 ㄱ씨가 주된 사업활동을 영위하며 막대한 사업상 자산을 보유·관리하는 등 매우 밀접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곳”이라며 “국내 사업장에서 월 80만원 상당의 임대수입을 얻기는 했지만 미미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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