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열린 인천의 한 아파트 야시장. 장터주막에서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김가윤 기자
“와, 20년 전에 했던 건데.”
장터주막, 바이킹, 솜사탕…. ‘추억의 야시장’이 돌아왔다. 회오리감자, 떡볶이, 순대곱창 등 전통적인 먹거리는 물론, 미니 바이킹, 인형 사격 등 아이들이 즐기는 옛날 놀이기구와 게임까지. 코로나19 이후 그간 못했던 축제를 하듯, 부쩍 야시장을 여는 아파트 대단지가 늘고 있다.
인천의 한 아파트 대단지에서 양일간 열린 야시장을 지난 17일 가보니, 본격적으로 천막을 펼친 오전 10시께부터 밤 10시까지 단지 내부 도로에선 먹거리와 놀이기구, 무대를 즐기려는 주민들로 가득 찼다. 아파트 야시장은 도로를 일부 통제한 상태에서 진행됐다. 300m 정도의 거리에 150여개의 천막이 차려졌다.
지난 17일 열린 인천의 한 아파트 야시장. 300m 정도의 거리에 천막 150여개가 설치됐다. 김가윤 기자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6시부터 최고 인기를 누리는 곳은 장터주막. 해물파전, 두부김치, 낙지볶음 등 메뉴에 술잔을 기울이는 주민들로 가득해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가족들과 숯불 바비큐를 먹던 주민 김아무개(63)씨는 “요즘 이런 축제는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지 않았냐”며 “멀리 가지 않아도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맛있는 회오리감자예요.” 천막에선 너도나도 관심을 끌었다. 발길을 멈춘 주민들은 주머니 속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들었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솜사탕 기계 앞에선 솜사탕 색깔을 고르는 어린아이들과 부모들이 줄을 섰다. 요즘 인기 있는 탕후루나 마시멜로 구이와 같은 새로운 메뉴들도 있다.
지난 17일 열린 인천의 한 아파트 야시장. 사격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 김가윤 기자
아이들이 즐길 거리도 한가득하다. 미니 바이킹, 에어바운스는 줄을 서야만 탈 수 있었다. 아이들이 탄 바이킹 주위로 지켜보는 어른들과 ‘나도 타고 싶다’며 떼를 쓰는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인형 사격, 자석 다트 게임, 금붕어 게임엔 어른들도 함께 열중하고 있었다. 4살, 9살 아이와 함께 구경을 나온 조아무개(41)씨는 “옛날에 있었던 야시장과 (모습이) 거의 똑같다. 코로나19 전까진 작게 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크게 한 건 오랜만이다”라고 했다.
야시장은 주로 봄, 가을에 열리지만 여름에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식으로 종종 진행된다. 야시장마다 경품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초대 가수를 부르는 등 특징도 있다. 이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주민들과 화합하는 차원에서 열었다”며 “다른 아파트에서 야시장을 여는 것을 보고 우리도 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열린 인천의 한 아파트 야시장.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는 미니 바이킹. 김가윤 기자
이처럼 대단지 아파트 야시장을 기획하는 업체는 전국에 10여개팀이 있다. 품목(닭꼬치, 슬러시, 장터주막, 솜사탕 등)이 겹치지 않게끔 상인들이 모여 하나의 팀을 꾸리고 전국을 다니는 것이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등 주민들이 야시장 기획 업체를 섭외하면, 업체가 문자 등으로 일정을 공유하고 소속 상인들을 불러 모은다. 에스엔에스(SNS)에 ‘대박장’이라며 새로운 상인들을 모집하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수요가 더욱 많아졌다고 한다. 야시장 기획 업체 한아무개 대표는 “어머니가 30년 전부터 야시장을 해왔는데 따라서 8년 전부터 시작했다”며 “코로나19 땐 아예 못했지만 예전 추억을 떠올리는 아파트 주민들의 요청이 최근 많아졌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열린 인천의 한 아파트 야시장. 단지 내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김가윤 기자
이번 추석에도 전국 곳곳의 아파트에서 야시장이 열린다. 상인을 모집하는 에스엔에스 글엔 ‘이제는 추석 행사도 아파트 시대인 것 같다’는 문구도 붙어 있었다.
솜사탕을 파는 상인 60대 김아무개씨는 쉴새 없이 전달되는 아파트 야시장 일정 문자를 보여주며 “엄청 바쁘다”며 웃었다. 그는 “퇴직하고 소일거리를 찾다가 이 일을 시작했는데 방방곡곡 다니며 아이들도 만날 수 있어서 재밌다”고 말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