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에서 열린 사단법인 문화자유행동 창립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세종대왕 동상 이전을 주장해 물의를 빚은 보수단체가 대관이 불가능한 공공기관에서 창립식을 연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공공기관 임원을 지낸 보수단체 대표가 현직 임원에게 직접 장소 사용을 청탁해 대관이 이뤄졌다. 민간단체 행사에 공공기관이 특혜를 준 셈이라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행사에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등 여권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설명을 종합하면, 보수 성향 문화예술인들이 모인 신생단체 ‘문화자유행동’은 12일 민간 대관이 불가능한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 회의실에서 창립식을 열었다. 관광공사 회의실은 내부용으로, 관광공사 내부에는 대관 관련 규정 자체가 없어 민간 대관이 불가능하다. 관광공사가 최근 5년간 민간단체 단독주최 행사나 창립식에 장소를 빌려준 사례는 문화자유행동 창립식이 유일했다. 관광공사는 장소 대관뿐 아니라 문화자유행동 창립식 참석자들을 위해 주차 편의를 봐주거나, 음향점검 등을 위해 직원을 투입하기도 했다.
관광공사 대관은 창립식을 앞두고 이재경 ‘문화자유행동’ 공동대표가 서울센터 회의실 사용을 전아무개 관광공사 경영본부장에게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이 대표는 관광공사에서 경영본부장과 부사장 등을 지내 전 본부장과 선후배 관계다. 전 본부장은 관광기업협력팀에 지시해 회의실 예약을 진행했다. 이병훈 의원은 “준정부기관인 관광공사가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는 우파 민간단체에 규정에도 없는 대관을 해주고 편의를 봐준 것은 특혜다. 이 단체가 정권이 비호하는 단체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살만하다”고 비판했다.
문화자유행동은 창립식에서 문화예술계의 ‘우파 활동’을 노골적으로 강조해 정부·여당의 친위대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문화자유행동은 21일 다른 보수 성향 단체들과 함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지지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유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당시 문체부 장관을 하며 ‘문화계 좌파 인사 찍어내기’를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문화자유행동의 창립식에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용호·김승수·구자근 의원,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나경원 전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최범 공동대표는 이날 창립식 발표문에서 “광화문광장을 조선시대 인물이 채우고 있는 것을 보고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나는 우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세종과 이순신을 그냥 위대한 조상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는 근대국가가 무엇인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자일 수 있는가”라고 발언해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또 “사실상 좌파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종족주의”라며 뉴라이트 사관을 드러내기도 했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행사 내용, 파급성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회의실을 사용하도록 한 것에 대해 문제 인식을 느끼고 있다”며 “행사 내용을 사전에 파악하는 프로세스를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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