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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56살 소방관 진료기록만 27쪽인데, 치료 지원은 1건뿐

등록 2023-09-18 05:00수정 2023-09-20 09:22

[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①공상 신청된 소방관 부상·질병 분석
최근 1년간 소방관 639명, 근골격계 손상·외상으로 공상 신청
28년차 소방관 김분순씨가 지난 7월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전로 마포소방서 구급차 안에서 응급 상황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8년차 소방관 김분순씨가 지난 7월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전로 마포소방서 구급차 안에서 응급 상황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소방관들은 재난을 수습하며 늙어간다. 재난은 이들에게 부상과 질병, 때로는 죽음을 안긴다. 그런데 소방관들은 정작 망가지는 자신의 몸보다 구조하지 못한 시민들의 죽음에 부채감을 느끼며 산다. 한겨레는 재난이 남긴 부상과 질병을 안고 늙어간 소방관 15명과 이들의 가족 및 동료 12명을 전국을 오가며 만나 두달 동안 심층 인터뷰했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늙은 소방관들의 평균 나이는 58살, 평균 근무 경력은 29.1년이었다.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국가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 5회에 걸쳐 짚어본다. 

28년차 소방관 김분순(56)이 지금껏 받은 병원 진료 기록은 27쪽에 이른다. 경력 대부분을 구급대원으로 일하며 위급한 상황에 처한 시민들을 구호하고 이송한 김분순은 근골관절염, 연골파열, 척추협착 등의 근골격계 통증과 갑상선암 등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하지만 김분순은 지난 7월 ‘근골관절염’ 하나에 대해서만 정부에서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공무상 요양(공상)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복잡한 절차와 더불어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탓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어려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도, 소방관이 지난해 인사혁신처에 공상을 신청해 승인된 건수는 1075건에 이른다. 하루 평균 3건에 육박한다. 3년 전부터 해마다 1천건을 넘나든다.

한겨레가 소방관 출신인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전국에서 소방관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부상이나 질병을 입고 공상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경위조사서 761건(제출된 조사서 전수)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84%(639명)에 이르는 소방공무원이 디스크나 골절상 등 근골격계 손상과 외상으로 공상을 신청했다. 경위조사서는 공상 신청 때 해당 직원의 소속 기관이 작성하는 확인 서류다.

경위조사서(두가지 이상 부상 땐 중복 계산)의 내용을 보면, 지난 1년 동안 뼈가 부러지는 골절상이 99명, 근육·인대·아킬레스건 등 파열이 107명, 목과 허리 디스크(경추·요추추간판탈출증) 58명, 목·팔목·무릎·발목 등 염좌가 94명이었다. 2도 이상 화상을 입은 이도 25명이나 됐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사고로 부상하게 된 유형으로는 수관이나 들것 등 중량물을 옮기는 작업 등에서 발생한 불균형 및 무리한 동작 223명, 다리가 접질리는 등의 넘어짐 110명, 교통사고 81명 순이었다. 떨어짐(35명)이나 부딪힘(34명), 출동 현장에서 폭행 피해(33명)도 적지 않았다.

직무별로 나눠서 보면, 구급대원들은 환자를 들것으로 들거나 이송하는 과정에서 허리·무릎·어깨 등이 손상되는 불균형 및 무리한 동작 관련 근골격계 손상과 외상이 잦았다. 구급대원들의 사고 경위조사서에서 ‘들것’이 언급된 사례가 43건이나 됐다. 김분순은 주로 산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며 환자를 이송해야 할 때 이런 부상이 생긴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마을에는 계단으로 모든 환자를 움직여야 해요. 들것을 끌고 메고 다니다 보니까 무릎, 발목, 손목, 어깨, 허리가 다 무너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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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인터랙티브 ‘화인(火印) : 몸에 새겨진 재난’ 페이지는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 https://www.hani.com/119/

▶‘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전체 기사를 볼 수 있는 웹페이지는 여기 있습니다 : https://www.hani.co.kr/arti/SERIES/1885/

구급대원은 교통사고도 잦다. 교통사고 81건 가운데 구급차로 환자를 병원에 이송하거나 응급환자 신고를 받고 출동하다 사고가 난 일이 46.9%(38건)나 됐다. 출동 현장에서 폭행을 당해 부상하는 경우도 대부분의 구급대원(33명 가운데 32명)에게 발생했다. “신호 조작을 하고 가도 급하게 이동하다 보니 교통사고가 많이 나지요. 저도 교통사고를 세번 겪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려고 누우면 차량 소음이 크게 들리는 등 트라우마가 생긴 적이 있어요. 게다가 구급출동을 했을 때 주취자를 상대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폭행당하는 일도 잦아요. 저도 어르신 환자에게 지팡이로 맞은 일이 있었어요.” 김분순의 말이다.

28년차 소방관 김분순씨가 지난 7월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전로 마포소방서에서 수술받은 다리를 보여주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8년차 소방관 김분순씨가 지난 7월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전로 마포소방서에서 수술받은 다리를 보여주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화재진압·구조대원도 불균형 및 무리한 동작(진압대 87명, 구조대 44명) 사례가 가장 많았는데, 특히 화재진압·구조대원들은 소방호스 작업 과정에서 근골격계 손상과 외상이 많이 생긴다. 넘어짐(32명)과 미끄러짐(35명)도 많았다. 부산 기장군에서 근무하는 소방관 이아무개(56)씨는 수관을 들다 극심한 허리 통증이 생겨 진단을 받아보니 허리 디스크인 요추추간판탈출증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정경숙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교수(직업환경의학)는 “화재 진압 때 소방호스는 1.5~4M㎩(메가파스칼)의 기압을 견뎌야 한다”며 “소방관 1명은 0.3M㎩의 압력을 받아 분당 0.5톤의 소방호스 압력을 버텨야 하므로 무릎과 허리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화재진압·구조대원의 경우 현장에서 구조물이 무너지거나 예측하지 못한 지형으로 빠지는 등 추락 사고를 겪는 일도 많았다. 추락으로 인한 근골격계 손상 35명 가운데 20명이 화재진압·구조대원이었다. 소방관 최아무개(50)씨는 서울의 한 지역 소방서에서 화재 출동을 갔는데, 지붕이 무너지면서 진압대원 4명과 동시에 추락해 허리 염좌와 타박상을 입었다.

더욱 문제는 외상에 더해 화재 현장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 무리한 교대근무로 인한 스트레스 등이 축적돼 발생하는 질병이다. 오영환 의원실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지난 6월까지 5년 가까운 기간 동안 질병으로 공상이 인정된 소방관 547명 가운데 50대 이상이 40.6%로 가장 많고, 40대(27.4%)와 30대(24.1%)가 뒤를 이었다. 사고로 인한 부상으로 공상을 인정받은 소방관은 30대가 41.7%로 가장 많은 점과 대조된다. 재난과 구급 현장을 뛰어다니는 20~30대 대원들은 사고를 겪을 위험이 높고, 이런 일이 축적되면서 건강이 악화한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질병을 얻게 되는 경로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2020년 7월부터 지난 6월까지 3년 동안 공상을 신청한 질병 경위조사서 264건을 분석해보니, 암 환자가 20.1%(53명)나 됐고, 암 환자 중에선 화재진압대원이 75.5%(40명)나 됐다. 암은 유형별로 신장암 8명, 폐암 6명, 전립선암 5명, 방광암 2명 등이었다. 김인아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는 “일반적으로 소방관은 폐암, 백혈병 같은 혈액암, 방광암의 발병 위험이 큰 걸로 알려져 있다”며 “국제암연구소(IARC)는 소방관이라는 직업 자체를 암 발현 가능성이 높은 1그룹으로 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근경색·뇌출혈 등 심뇌혈관 질환을 앓는 소방관도 19.3%(51명)나 됐다. 소방관의 업무는 심뇌혈관 질환 발생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윤진하 연세대 교수(예방의학)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경찰관 및 소방관의 뇌심혈관 질환의 위험: 전국 후향적 코호트 연구’를 보면, 전체 공무원의 심뇌혈관 질환 발생 위험도를 1로 놓을 때 경찰관과 소방관의 발생 위험도는 각각 1.74, 1.22로 나타났다. 윤 교수는 “일을 시작할 나이인 20대에는 일반인보다 건강한 사람들이 소방관으로 근무한다. 그러나 40대가 넘을수록 건강 위험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진다”며 “교대근무와 출동, 수면장애와 스트레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인해 심뇌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목·허리 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은 63명이었는데, 이는 앞선 근골격계 손상들이 축적돼 질병으로 이어진 경우들이었다. 김 교수는 “근골격계 질환은 아주 작은 손상들이 겹치면서 나중에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손상이 된 것”이라며 “소방관처럼 중량물 작업이 많은 경우는 퇴행성 변화가 연령에 비해 빨리 진행되거나 끊어지지 않아야 될 인대가 끊어지는 등의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32명이었다. 이 가운데 75%(24명)가 구급활동 경험이 있을 정도로 이 장애는 구급대원에게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 밖에 사이렌 소음으로 인한 난청은 22명, 신경계 질환은 12명이었다. 김범진 소방관처럼 파킨슨병을 겪은 이는 5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4명은 화재 진압 및 조사 경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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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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