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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균용 판결 성향…경제·젠더·사법행정 ‘강한 보수’-공권력 ‘약한 진보’

등록 2023-09-17 16:09수정 2023-09-19 12:02

2015년 2월~2021년 2월 판결 1천여건 분석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8월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8월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친한 친구의 친한 친구’ 이균용(62·사법연수원 16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새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오는 19~20일 열리는 이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이 후보자의 과거 판결문을 분석해보니 그는 기존 법질서를 고수하는 ‘강한 보수’ 성향으로 나타냈다.

한겨레는 헌법재판관 판결 성향을 분석해 온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이론적 분석 틀을 토대로 법률 데이터 기업 ‘엘박스’로부터 판결문을 제공받아 이 후보자가 2015년 2월~2021년 2월 선고한 서울고법 행정2부 판결(693건)·형사7부 판결(208건)·형사8부 판결(113건)과 기타 주요 판결을 해석했다. 임 교수의 ‘사법 진보주의/사법 보수주의’ 분석 틀은 ‘기존의 법질서’를 변화시키려 하는지(사법 진보주의), 유지하려 하는지(사법 보수주의)로 나눈다. 이 후보자는 경제와 젠더, 사법행정에서는 ‘강한 보수’, 공권력 행사에서는 ‘약한 진보’ 성향을 보였다. 정치와 사회적 약자에서는 성향을 판단할 만큼 충분한 판결문을 내놓지 않았다.

■ 경제 ‘강한 보수’ 성향…재산권·경영권 중시

이 후보자는 경제 분야의 기존 법질서인 ‘자유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유지하려는 판결 성향을 보였다. 개인의 재산권과 직업수행의 자유, 기업의 경영권을 중시하는 게 대표적이다.

2009년 지역 금융기관이 명예퇴직을 거부하는 임원을 정리해고한 사건에서 이 후보자는 회사 쪽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정리해고할만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있다”라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그 판단을 뒤집었다. 회사가 당기순이익을 내고 성장률도 높았던 점을 들어 부당한 정리해고라고 판단한 것이다. 2015년에는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은 위법이라는 1심 판결을 깨고 이 후보자는 “한의사에게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15년 2월~2017년 2월 서울고법 행정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면서 이 후보자는 산업재해 등 노동 관련 사건 36건을 맡았는데, 항소기각 판결이 32건, 원고 승소를 패소로, 패소를 승소로 뒤집은 판결이 각 2건이었다. 이 가운데는 화물탁송기사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면서 “회사가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든 기사의 운행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감시·감독은 이뤄지지 않았다” “원청 상호가 적힌 근무복을 지급하고 착용을 독려했지만, 입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을 가하지는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든 것도 있었다.

■ 공권력 행사 ‘약한 진보’…사법행정·젠더 ‘강한 보수’

행정부의 공권력을 개인의 권리보다 중시하는 태도를 ‘기존의 법질서’로 설정한다면 이 후보자는 개인의 권리에 저울이 더 기울어진 것으로 나타냈다. 2019년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과 관련해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업무상 과실치사를 유죄로 판단해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이 후보자는 “시위 참가자들이 불법행위로 민·형사상 책임을 지는 것처럼, 경찰 쪽이 적정 수준을 초과한 수단을 썼다면 그에 따른 법적 책임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15년에는 희망연대 노조가 경찰을 상대로 집회금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노조 쪽 손을 들어줬다.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사법 행정(기존의 법질서)을 옹호하는 판결로 사법행정 영역에서는 ‘강한 보수’ 성향을 보였다. 이 후보자는 2021년 ‘사법농단’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은 영장전담 판사 등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을 보면 ”사법행정 담당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는 법관이 누구이고 그 혐의가 사실인지를 (수사기록 등) 여러 경로를 통해 파악하는 것은 정당한 사법행정 사무의 수행”이라고 돼 있다. 사법행정에 대한 이 후보자의 견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사법농단 사태가 불거진 당시 서울남부지법원장을 맡았던 이 후보자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려 했다. 예컨대 법원장의 법관 사무분담 권한(인사권)을 일선 판사들과 나누기 위해 ‘사무분담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는데, 이 후보자는 이를 거부했다. 또 판사회의에서 의결한 내용을 법원 내부망에 올리는 것에도 반대해 일선 판사들과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2016년 투레트증후군(틱장애)을 앓는 장애인의 장애인등록을 거부한 행정처분을 차별이라며 취소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지적장애인이 피해자인 성추행 사건에서는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진 점 등을 들어 실형에서 집행유예로 감형하기도 했다. 또 13살의 지적장애인을 모텔로 끌고 간 사건에서는 형량을 가중하기도 했다. 피해를 입증할 제3자의 진술이 뒤늦게 확보되는 사정변경이 있었다. 서울고법 행정2부 재판장으로 120여건의 난민 불인정 결정 취소 소송을 맡았는데 대부분 항소기각이나 각하로 판결해 성향을 분석할 근거 자료가 되지 못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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