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가 교정 내 홍범도 장군 흉상을 학교 밖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 앞에 흉상 철거를 반대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박노자 오슬로대학 교수가 ‘실정을 거듭하고 있는 정권이 이념 문제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독립운동가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2일 박노자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에서 “육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촌극은, 일면으로는 그야말로 ‘연막 공작’쯤으로 보일 수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박 교수는 해당 글에서 “지금 수출이 부진해 금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세계 전체 평균보다 2배나 낮고, 일본 오염수 방류 등 한국 정부가 종범이 된 대형 환경 범죄도 주변에서 감행되고 있는데, 이 총체적 난국에 대중의 관심을 돌릴 만한 ‘거리’ 하나가 필요했다는 것이 이 분석의 골자”라고 밝혔다. “‘홍 장군의 흉상 철거’와 그 철거가 초래한 ‘이념 시비’가 ‘대중의 눈을 돌릴 만한 소재’”라는 것이다.
박노자 오슬로대학 교수 페이스북 계정 갈무리.
박 교수는 전날 올린 글에서도 “깊어져 가는 경제 위기, 오염수 방류와 어업의 장기적 황폐화 등 굵직한 현안에 있어서의 정부의 무능과 실정을 덮으려고 지금 고인이 되신 독립 운동 영웅 분께 이념 시비를 거는 꼴”이라며 “정말 염치없는 패당이고 ‘정부’라고 부르기도 뭐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 교수는 “홍 장군은 단순히 독립운동 영웅만은 아니다. 50만명 고려인의 집단적 정체성의 상징이기도 하다”며 “이 50만명 고려인들의 5분의 1은 지금 국내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이라는 국가는 그들을 사회적으로 통합해야 하는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과연 그 집단 정체성의 상징인 홍 장군을 이처럼 모독하는 게 이들에 대한 사회 통합, 나아가서 구소련 고려인 디아스포라와의 좋은 관계 구축에 도움이 되는가?”라며 반문했다.
지난달 28일 국방부는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해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 시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지난 31일 육사는 홍 장군의 흉상을 육사 밖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독립군 지도자 홍 장군은 189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반까지 조국과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싸웠고,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스탈린 정권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이주한 뒤 1943년 75살의 나이로 별세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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