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 공동취재사진
박근혜 정부 당시 민간인을 상대로 불법 도청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정원 대공수사국 수사관들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김동현)는 31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 국정원 직원 최아무개(46)씨에 대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최씨와 함께 기소된 전 국정원 직원 3명은 모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국정원 수사관들이 법률상 허용되지 않은 타인 간 사적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직무의 특성상 피고인들은 이런 위법행위를 조심해야 한다”며 “단순한 과실이나 실수에 의한 범죄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한 대학교 학생조직에서 활동했던 ㄱ씨를 속칭 ‘프락치’로 포섭해 조직 관련 정보를 수집해왔다. 최씨 등은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5년 7월 ㄱ씨가 ‘지하혁명조직’ 가입을 권유받고 곧 ‘총화’(지하조직 활동 적격성 확인 절차)를 하게 될 것이라는 제보를 받았다. 이들은 8월 총화 장소였던 충남 서산의 한 캠핑장을 사전 답사한 뒤 캐러밴 내부에 소화기 모양의 비밀녹음장비를 설치했고, 대학생들의 대화를 약 5시간 몰래 녹음했다. 이 사건은 프락치 ㄱ씨가 국정원에 협조한 활동 사실을 폭로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최씨 등은 ㄱ씨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녹음장치를 설치해줬을 뿐 녹음을 주도하지 않았고, ㄱ씨가 참여하는 대화만 녹음할 목적이었기 때문에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단순히 ㄱ씨에게 비밀녹음장치를 제공한 것뿐 아니라 주도적으로 녹음을 계획·실행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해 보인다”며 “내부 서류에 의하면 피고인은 비밀녹음장치의 특성상 ㄱ씨가 참여하지 않은 대화가 무작위로 녹음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전에 증거능력 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미필적으로나마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고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전에 법원 영장을 발부받지 않았고, 긴급 감청에 따른 사후허가도 거치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오랜 기간 국정원에 근무하면서 국정원장, 국무총리, 대통령 등으로부터 표창을 받는 등 모범적으로 공무원 생활을 한 점, 녹음 목적 자체가 사적 이익이 아닌 국가 안보를 위해 이뤄진 점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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