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을 위한 이동목욕차가 지난 7월20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 고가도로 아래 쪽방촌에 서 있다. 쪽방촌 주민, 노숙인, 이동이 어려운 어르신까지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19년 회사가 부도난 뒤 집도 절도 없이 거리로 내몰렸다.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배진우(43)씨는 서울 서초구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6개월만 버티려고 했던 게 1년이 지났고, 벌써 5년째다. 거리 생활이 길어진 덴 경제난 등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냄새난다고 곳곳에서 거절당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떨어진 자신감도 한몫했다.
■ 편의점·식당부터 목욕탕까지 눈총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편의점이나 식당 등 돈을 내고 들어가는 곳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했을 때, 그는 ‘씻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엔 공중화장실에서 씻어보려고도 했지만 눈치가 보였다. 없는 돈을 털어서라도 목욕탕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버스 기본요금 거리에 있는 목욕탕에 일주일에 한번 가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하지만 목욕탕에서도 난감한 일이 많았다. 냄새 때문에 목욕탕 손님들이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어떤 손님은 배씨를 보자 환불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그대로 나가버렸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길거리 생활은 길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서울시가 지난해 진행한 노숙인 실태조사를 보면, 서울의 거리 노숙인은 약 530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주로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머물지만, 땡볕과 폭우가 맞교대하는 여름이면 이들에게는 씻을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고충이 가장 크다. 식당에선 냄새가 난다며 쫓겨나고,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다가는 행인들과 충돌한다.
배씨의 경우 지난해부터 그를 거절하지 않는 이동목욕차가 강남까지 오면서 그나마 상황이 나아졌다. 서울시립영등포보현희망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이동목욕차 덕분에 그는 일주일에 샤워하는 횟수가 두번으로 늘어났다.
지난달 20일 저녁 7시께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앞에 선 이동목욕차가 개시하자 그는 익숙하다는 듯 헌 옷과 간식을 넣은 비닐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새까맣게 탄 피부에 기름기로 뭉친 머리카락, 후줄근한 까만 티셔츠에선 쾨쾨한 냄새가 났다. 목요일인 이날은 배씨가 일주일 중 이틀로 정해둔 목욕시간 중 하루. 10분여간 센터에서 주는 세면도구로 몸을 씻고 새로운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미처 말리지 못해 젖은 머리로 나선 배씨에게선 비누 향이 솔솔 났다. 배씨는 상쾌하다는 얼굴로 웃어 보였다. 하루에 한번 삼각김밥에 컵라면으로 식사를 때울 정도로 겨우 지내지만 목욕을 하러 다니는 이유다.
■ 이동목욕차는 6명 선착순
이동목욕차의 장점은 문을 걸어 잠그고 안전하게 목욕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동목욕차는 약 3m 높이에 넓이는 약 8㎥인 2.5t 트럭으로, 샤워꼭지가 2개가 달려 있어 성인 2명이 들어가 목욕을 해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내부가 넓다.
문제는 이동목욕차가 담을 수 있는 최대 용량은 물 600리터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루에 6~7명이 이용하면 영업 종료다. 차 1대를 장만하는 데 1억5천만원이고, 운영 비용은 한달에 대당 400만원이다. 무작정 차량을 늘리기도 어렵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만 해도 거리 노숙인이 70여명에 달한다. 배씨는 목욕차가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서둘러 이동한다. 폭우가 올 때면 배수가 녹록지 않아 운영이 어렵기도 하다. 그럴 땐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
서울시가 2018년부터 운영하는 이동목욕차는 점차 늘어 현재 기준 3대다. 노숙인 일시보호시설이 없어 ‘씻을 공간’이 마땅치 않은 청량리, 숭례문, 을지로입구,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목욕차가 다니며 생필품도 나눠주는 식이다.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1383명이 이용했고, 1대당 일평균 이용 인원은 6.9명이다. 의류나 세면도구 등 위생을 위한 생필품은 여름이 되면 더 늘어났다. 2월에 지원된 생필품은 299개였지만, 8월엔 1092개로 늘어났다.
물론 노숙인을 위한 일시보호시설 등엔 목욕 공간이 구비돼 있지만, 입소 규칙이 까다롭거나 입소 기간이 정해진 곳이 있어 거부감을 느끼는 노숙인들도 있다. 제한이 덜한 곳엔 많은 노숙인이 머물지만, 그만큼 목욕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다.
영등포구 내 노숙인 ‘무더위 쉼터’에서 만난 40대 후반의 최아무개씨는 하던 사업이 어려워져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동시에 관절염이 심해져 일용직을 하기도 힘들었다. 최씨의 다리에는 오래돼 보이는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최씨는 시설에 들어갔다가 다시 거리로 나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최씨는 “어떤 시설은 한방에 40~50명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샤워기는 서너개밖에 없어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며 “샤워기가 많은 센터에 입소하기도 했는데 거긴 기간이 짧아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간이 비좁고 수압이 약해 목욕이 어려운 곳도 있다.
■ 여성 노숙인 “남성 위주 샤워시설에 위험”
여성 노숙인들은 더욱 씻기가 어렵다. 노숙인들을 위한 센터 중엔 ‘남성 전용’ 샤워시설이 많아서다. 씻으려면 문을 꼭 잠그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씻으려고 시설을 들어가기만 해도 남성 노숙인들이 눈치를 준다. 그럴 때마다 여성 노숙인들은 ‘위험하다’고 느끼게 된다.
2012년 재개발로 머물 곳을 잃은 서가숙(67)씨는 10년 넘게 서울역을 맴돌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가는 성당에서 “닦고 다녀라”라는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는 새 움츠러들었다. 서씨는 “사람들이 날 더럽다고 느끼는구나, 내 몸에서 냄새가 많이 나는구나를 느꼈다”고 말했다. 몸을 씻으려고 보니, 시설 화장실엔 남자 노숙인들이 배회했다. 문을 꼭 잠그고도 불안한 모습이 보였던지 성당에선 여성 노숙인만 씻을 수 있도록 따로 시간을 내어주기도 했다.
씻을 기회가 적다 보니 여름이면 땀 때문에 온몸이 종일 가려워 고통스럽다. 심할 땐 피부가 “시리다”고도 했다. 서울역 인근에 있는 센터에 씻을 공간이 있었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던 기간엔 출입 통제가 심해져 씻는 빈도가 줄기도 했다. 70대 여성 노숙인 가고파씨는 “여성 전용 쉼터가 근처에 있었는데 먼 곳으로 이사했다. 버스비를 들이긴 힘들어 많이 가지 못한다”며 “냄새가 난다고 하면 위축돼서 어딜 다니지도 못한다”고 얘기했다.
노숙인들의 ‘씻을 권리’에 대한 시설 관계자들 사이의 인식차는 있다. “목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많은데 씻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 시설 관계자도 있지만, “이동목욕차나 이동식당을 통해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유롭게 씻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한 관계자도 있었다.
이동목욕차의 정책적 목표와 관련해 서울시 자활지원과 관계자는 “씻는 행위를 권유하면서 생활 습관이나 위생을 개선하고 상담과도 연계해 자립을 돕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홈리스행동은 “노숙인들에게 씻을 기회를 주는 건 필요하다”면서도 “서울스퀘어의 노숙인 강제퇴거 조처를 시가 방관하는 등 머물 수도 없게 하면서 씻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은 조화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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