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판사 시절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징역 8개월 실형을 선고했던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이 “정진석 의원 사건과 조 전 청장 사건은 내용이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범죄 대상과 죄명은 같지만, 범죄의 형태·검찰의 구형·피고인의 사후 대처 등이 달랐기 때문에 자신의 판결은 정당하지만, 정 의원에게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한 이번 판결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두 사건 판결문을 비교해보면, 정 의원이 조 전 청장보다 엄벌 받을 사유도 많았다.
① “범행의 형태가 다르다?”
전 의원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두 사건의 “사실관계와 전후 사정이 명백히 다르다”며 “조 전 청장은 서울지방경찰청장과 경찰청장을 지낸 고위공직자로 ‘노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를 가지고 있다’는 허위발언을 했고 2심에서도 ‘차명계좌가 있다’며 치열하게 다퉜다”고 밝혔다. 반면 정 의원에 대해선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이명박 정부의 정치보복 때문이라며 정쟁화하자 이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덧붙였다.
수사 계통의 직무를 활용한 고위직 경찰의 허위사실 유포와 정쟁 과정 속 정치인의 허위사실 유포를 달리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하지만 실제로 판결문을 들여다보면, 조 전 청장은 노 전 대통령 수사와 전혀 관계없던 임경묵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으로부터 들었다고 주장하는 등 그의 수사 관련 직무와는 무관한 사건이었다. 정 의원은 발언의 근거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고 주장했지만 입증하지 못하는 등 출처를 대지 못했다는 점에서 피차일반이었다. 정 의원은 2018년 8월 검찰에 제출한 우편 진술조서에 극우사이트 ‘일베’에 올라온 게시물을 증거로 첨부하기도 했다.
오히려 조 전 청장이 약 400명 규모의 기동부대 강연 중 문제 발언을 한 것과 달리 정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정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박병곤 판사는 “페이스북 글은 토론, 인터뷰, 회의 같은 상황이 아니라 피고인이 미리 준비한 내용을 적극적으로 발표하는 상황에서 나왔다”며 “글에는 더 높은 수준의 정확성 및 표현의 적절성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② “검사 구형이 다르다?”
전 의원은 두 사건의 검찰 구형 차이도 강조했다. 정 의원은 애초 검찰이 벌금 500만원에 약식 기소했던 사안이고, 조 전 청장의 경우 검찰이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유사한 내용의 두 사건에서 검찰 구형이 달랐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검찰의 500만원 약식기소는 법원이 ‘약식기소 사안이 아니다’며 정식재판에 회부한 점에 비춰보면 부적절한 구형이었다.
검찰은 정식 재판에서도 벌금 500만원을 구형했는데, 그 근거가 자신들의 늑장수사였다. 검찰은 이 사건 최후진술 등에서 “범행 후 5년이 지났다는 점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고려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박 판사는 범행 후 5년이 흐른 점은 검찰의 느린 수사 때문이라며 ‘벌금 500만원 구형’의 근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박 판사는 “이 사건 수사는 일반 형사사건보다 매우 느리게 진행됐다. 기록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뒷받침할 합리적인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수사를 지연시킨 것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다.
③ “정진석은 사과했다?”
“조 전 청장은 유가족 측에 직접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한 적이 없”지만 정 의원은 “노 전 대통령 가족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주장도 전 의원이 강조하는 차이점이다. 하지만 정작 정 의원은 재판에서 노 전 대통령 유족에게 직접 사과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문제의 페이스북 글을 올리고 3일 뒤 삭제하면서 “봉하마을의 조호연 비서관이 전화했다. 권양숙 여사께서 뉴스를 듣고 마음이 많이 상하셨다고 한다”고 유족의 항의를 받은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당시에도 정 의원은 “박 시장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올린 글일 뿐, 돌아가신 노 전 대통령이나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유감을 표명했다”며 “(조 비서관에게) 제 뜻을 권 여사께 잘 전달해 달라고 했다”고 쓴 것이 전부였다.
이에 대해 전주혜 의원실 관계자는 “정 의원은 법정에서 유족에게 사과드린다고 말한 바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유족이 출석하지 않은 법정에서의 사과는 ‘직접 사과’로 인정되지 않은 셈이다. 박 판사는 “기록상 피고인이 노 전 대통령의 유족들에게 직접 사과를 하는 등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조처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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