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특별사면을 단행하며 개인 비리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던 기업 총수들을 대거 사면했다. ‘경제 위기 극복’이 사면 이유인데 불법을 저지른 이들을 사면해서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14일 “경제위기 극복 및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주요 기업 총수 등 경제인 12명을 사면했다. 배임 혐의로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확정받은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명예회장이 형선고 실효(전과기록 말소) 및 복권(자격 회복)됐다. 박 회장은 아들 박준경 사장에게 법인자금 107억원 가량을 담보 없이 낮은 이율로 빌려줘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았다. 롯데그룹 경영비리 사건으로 2019년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도 같은 혜택을 누렸다.

횡령 등 혐의로 2020년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된 이중근 전 부영그룹 회장, 횡령 등 혐의로 2019년 징역 3년을 확정받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도 복권됐다. 만기출소한 뒤에도 취업 제한 처분이 남아있었는데, 사면 덕분에 경영 일선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횡령 혐의로 2019년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은 강정석 전 동아쏘시오홀딩스 회장, 횡령 혐의로 2020년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던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운전기사 갑질’로 2019년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된 이장한 종근당 회장 등도 복권됐다.

정부가 내세운 ‘경제위기 극복’이 기업총수 사면으로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개혁연대 노종화 정책위원(변호사)은 “대부분이 횡령과 배임 등 지극히 개인적 비리를 저질러 유죄를 받았는데, 사면으로 어떤 긍정적인 경제적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반칙과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원하는 경제위기 극복 방향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날 ‘횡령 등 개인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왜 사면되는가’라는 기자들 질문에 신자용 법무부 검찰국장은 “기업을 운영하면서 저지르는 범죄에 횡령·배임이 많다. 주로 기업인에게 이런 범죄 유형이 많아 (사면 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실질적인 피해 정도와 회복 노력 등을 모두 고려했다”고 답했다.

정부는 자금상황 악화 등으로 처벌받은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 74명도 사면 대상에 포함했다. 정상적으로 사업체를 운영하다 경제적 어려움 탓에 범행을 저지른 사람 등이 포함됐다. 파킨슨병 등에 걸린 남편을 7년 동안 간병하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아내 ㄱ(75)씨도 사면됐다. 야채 가게에서 1만원 상당 쌀을 훔쳐 징역 4개월을 받았던 ㄴ(63)씨 등 생계형 절도 사범 3명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2176명이 특별사면됐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