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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온몸으로 소설 쓴 전방위 문화운동가였죠”

등록 2023-08-13 19:14수정 2023-08-13 19:24

[가신이의 발자취] 덕산기 ‘숲속책방’ 지킴이, 강기희 작가를 기리며

전방위 문화운동가로 활동한 강기희 작가. 조문호 사진작가 제공
전방위 문화운동가로 활동한 강기희 작가. 조문호 사진작가 제공

강원도 정선이라는 외진 땅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사람, 소설가 강기희를 생각합니다. 평생을 마치 단 하룻날인 것처럼 온몸으로 소설을 쓴 작가였고, 각종 문학 행사의 명사회자로 ‘정선 아라리 문학축전’을 전국 규모의 행사로 자리매김한 전방위적 문화운동가였지요.

지난 1998년 ‘문학21’이라는 잡지를 통해 소설가가 되었으니, 살아생전 문단 생활은 사반세기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장편소설 10권, 소설집과 시집 각 1권, 타계 직전인 6월엔 인문여행서 ‘정선’을 펴냈으니, 허투루 문학을 했던 작가는 결코 아니지요.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모든 문학은 결국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그대는 고향 땅을 자신의 문학적 근거지로 삼아 이 세상의 허위와 진실을 발견하려고 애썼습니다. 대학 졸업 뒤 참다운 문학을 위해 현장을 찾기로 결심하고 성남 모란시장 인근에서 살았지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그들과 더불어 세상사를 깨치게 되었고, 부조리한 민중 현실에 눈뜨게 되었습니다.

하고 많은 삶 중에서 문학이라는 길을 걸어간 그대를 생각합니다. 그대가 ‘글쟁이’라는 외길을 선택한 것은 가계사적 아픈 상처를 밑거름 삼아, 거기에 내재된 생의 진실을 발견함으로써 결국은 그대 자신을 구원하고, 아픈 세상을 치유하려고 했습니다.

고향땅 정선을 문학적 근거지 삼아
장편 10권, 인문여행서 ‘정선’ 등 내
시대정신 담고 공동체 세상 추구

2004년 한국문학평화포럼 결성
정선문화연대·민족작가연합 상임대표
‘한국 문단의 사회주의자’이자
각종 문학행사 휘어잡은 명사회자

그대는 소설이라는 렌즈를 통해 공동체 세상을 추구했습니다. 장편소설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를 통해 위기에 처한 생태환경을 세상에 알렸고, ‘개 같은 인생’ ‘이번 청춘은 망했다’를 통해 비루한 생존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사람들을 주목했으며, ‘연산―대왕을 꿈꾼 조선의 왕’ ‘위험한 특종―김달삼 찾기’ ‘원숭이 그림자’ 등을 통해 역사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찾아 나섰고,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상을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생전에 마지막으로 펴낸 단편집 ‘양아치가 죽었다’를 통해 정선 지역의 역사와 문화, 경제사회적 실상을 서사화하는 등 ‘시대정신’을 잃지 않은 작가로 기억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대는 문단에서 ‘사회주의자 강기희’로 통했지요. 지난 2004년 10월에 우리는 홍일선 시인, 김영현 작가 등과 함께 ‘한국문학평화포럼’을 결성했고, 독자 대중과 함께하는 문학을 위해 국내외에서 100여 차례의 문학축전과 출판기념회를 치렀지요.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상생을 기원하는 각종 행사장에서 그대는 특유의 말솜씨로 청중을 휘어잡았지요. 조선 오백년 선비다운 긴 턱수염과 청산유수 같은 목소리로 그대는 문학의 참된 길, 사람됨의 문학정신을 설파했습니다. 그대는 ‘정선문화연대’, ‘민족작가연합’ 상임대표로 여러 활동을 했습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인생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요. 주민등록상 1964년생이니 100살 시대 미처 환갑도 맞이하지 못한 운명을 생각합니다.

2020년 11월 강원 정선군 덕산기계곡 ‘숲속책방’에서 고인과 문화계 지인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기동, 녹우 가수, 이승철 시인, 강기희 작가, 전형근 화가, 엄계록 가수, 박제영 시인. 이승철 시인 제공
2020년 11월 강원 정선군 덕산기계곡 ‘숲속책방’에서 고인과 문화계 지인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기동, 녹우 가수, 이승철 시인, 강기희 작가, 전형근 화가, 엄계록 가수, 박제영 시인. 이승철 시인 제공

2021년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서도 그대는 좌절을 모르는 시시포스 신처럼 긴긴 고통의 시간을 깡마른 육신으로 버티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지난 6월3일 온갖 신산고초를 겪은 뒤 정선 덕산기계곡 오지에 ‘숲속책방’을 재개관하던 날, 당신의 쾌유를 빌며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사람을 기억합니다. 그대는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썼고, 7월23일에는 운명을 예감하는 유언을 소셜미디어(SNS)에 남겼습니다.

“후회는 없고요, 운명이라 받아들입니다. 걱정들 고맙고요. 행복했습니다. 징징 울지 않습니다. 웃을랍니다.”

지난 8월1일 그대의 부음이 전해졌고, 우리는 ‘정선문화인장’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대의 뜻을 받들어 화장된 유해를 덕산기 ‘숲속책방 지킴이’로 모셨습니다. ‘원시반본’이라더니 그대가 태어났던 그 땅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지금은 그대의 아내 유진아 작가가 슬픔을 억누르면서 소중한 그 책방을 지키고 있을 겁니다.

말하자면 그대는 누구보다도 뜨겁게 이 세상을 사랑했고, 또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은 작가였으니, 그래도 한세상 잘 놀다 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덕산기 하늘의 무지개로 혹은 한없이 흘러넘치는 계곡수로 되돌아오고 있는 그대를 보고, 또 봅니다.

이승철/시인·한국작가회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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