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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대법원 “사법입원제 신중해야”…졸속 도입 땐 형식화 우려

등록 2023-08-08 16:42수정 2023-08-08 16:58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연합뉴스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을 계기로 법무부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검토 중인 가운데, 과거 대법원이 ‘신중 검토’ 의견을 세 차례에 걸려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은 인적·물적 자원 확보가 선행되어야 하다고 강조해, 사실상 현 단계에서의 사법입원제 도입을 반대한 셈이다.

대법원은 2018년과 2019년 ‘사법입원제 도입’을 뼈대로 한 김재경 의원안·김상희 의원안·윤일규 의원안에 대해 ‘신중검토’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8일 확인됐다. 당시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 경남 진주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으로 사법입원제 도입 논의에 불이 붙었고 관련 입법안이 여럿 발의된 상황이었다. 세 법안 모두 정신질환자의 입원 적합성 심사를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아닌 가정법원이 전담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대법원은 “판사·재판보조인력·호송인력 등 인적자원 및 물적자원 확보를 위한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신중 검토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은 강제입원에 대한 최초 입원심사 건수가 연간 10만건을 웃돌 것이라 예상하면서 “판사 1인당 담당할 입원심사 사건이 많을 경우 심리 자체가 형식화되어 서류심사화 되고, 강제입원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면심사가 형식화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성과·장단점·효율성 등 분석”을 먼저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는 국립정신병원 5곳에 의사·법조인·당사자 등으로 구성된 기구로, 법률에 따라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을 일정 기간 유지하려면 이곳에서 입원유지가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려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5년 강제입원이 처음 법제화됐다. 이후 2016년 헌법재판소는 해당 제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강제입원 요건이 엄격해진 ‘입원적합성심사제도’가 만들어졌다.

서구권에서는 18세기부터 법원이 강제입원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애초 치료가 아닌 ‘부랑아 수용’ 등을 목적으로 출발해 자유 박탈의 문제로 보기 때문에 사법 심사를 거치도록 한 것이다. 독일의 경우 강제입원은 △민사수용(성년후견인이 신청) △공법상 수용(자·타해 가능성있는 환자에 대해 행정기관이 입원 신청) △형사수용(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 치료처분)으로 나뉘지만, 모두 법관이 입원을 결정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형사수용을 제외하고는 가사소송법에 의해 강제입원 사건 심리가 이뤄지는데, 사건이 접수되면 당사자 심문과 조사, 검사 및 감정 등의 절차를 걸쳐 강제입원 여부를 결정한다. 환자는 변호사 등을 ‘절차보좌인’으로 선임할 수 있다.

대법원은 법원이 강제입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면 가정법원이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2016년 국내외 강제입원제도를 검토한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연구 용역 결과보고서 ‘정신보건법상 강제입원제도 개선과 가정법원의 역할’(서울시립대학교 산학협력단)은 “법원이 강제입원심사에 대한 최후의 통제기관이자 보루로서 역할 하고자 한다면 가정법원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보고서 역시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독일·프랑스·미국처럼 법원이 강제입원 사건을 모두 심리하려면 판사 178명·조사관 893명을 증원해야 하고, 국선변호사 선임비용 연간 214억원이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가정법원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강제입원은 긴급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속하게 심리해서 결정을 내릴 만한 인력과 자원이 법원에 갖춰지지 않았다. (사법입원제를) 법원이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법입원제를 도입하려면 장기적인 시각으로 법관 증원 등을 염두에 두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법무부의 사법입원제 도입 검토 발표와 관련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사전 조율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법원행정처는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에 대한 입장을 묻는 한겨레의 질의에 “법무부가 추진 중인 사법입원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및 현행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운영성과 등에 대한 아무런 자료가 없으므로 현 단계에서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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