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 1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가운데 해병대 전우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바둑판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할 것.’
지난달 18일 오후 6시께 임성근 해병1사단 사단장의 지시가 내려왔다. 이어 저녁 10시께 사단 단체 카톡방에 “내일 7대대 총원 허리까지 강물 들어갑니다”라는 지시에 공유됐다. ‘허리까지 강물에 들어가기’로 한 날인 19일 고 채아무개 상병(이하 채 상병)은 구명조끼 없이 수중 수색에 투입됐다가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군인권센터는 “물에 들어갈 계획이 없었다가 사단 지시로 사고일부터 물에 들어가게 됐다”며 지휘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인권센터는 8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채 상병이 소속됐던 중대의 카카오톡 대화방 내용, 동료 병사들의 제보 등을 근거로 사고 경위와 원인들을 분석한 결과 해병1시단 지휘부의 ‘무리한 수중 수색 지시’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물속에 투입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부대를 수중 수색에 투입해 발생한 예정된 참사가 명백하다”며 “사단 지휘부가 ‘해병대가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안전을 무시하고 무리한 지시를 남발하다 발생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센터 설명을 종합하면, 채 상병이 소속된 포병7대대는 ‘대민지원을 한다’는 얘기만 듣고 지난달 17일 작전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튿날 새벽에야 실종자 수색정찰이 임무라는 사실이 카톡방을 통해 전파됐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부대는 수해복구 작업으로 이해한 탓에 구명조끼와 같은 장비는 챙겨오지 않았다.
지난달 18일 오후 단체 카톡방에 전파된 해병1사단장 지시. 군인권센터 제공
사고 전날인 18일 작업은 습지대에서 이뤄졌다. 비가 많이 내리면서 수색이 어려울 땐 일렬로 서서 하천 주변 도로를 순찰하는 등 강도를 조절했다. 그러자 오후 4시22분 ‘군인다움 미흡’이라는 임성근 사단장의 질책이 내려왔다. 임 사단장은 ‘비효율적으로 하는 부대장이 없도록 바둑판식 수색정찰을 실시할 것’, ‘특히 포병이 비효율적이다’고 지시했다. 센터는 “(포병은) 비가 와서 습지대, 물가에서 작업하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임 사단장이) 현장상황과 괴리된 질책을 한 것”이라며 “장병 안전에는 관심이 없고 외부에 비치는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숙소에 복귀하자 군 지휘부의 지시는 더욱 강도가 높아졌다. 물에 들어가 실종자를 탐색하고 사단장, 사령관, 장관이 방문할 예정이니 기본자세를 철저히 유지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체육복 상의, 전투복 하의, 우의, 장화 등 복장 규정이 전파됐지만, 구명조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날 아침에도 사단장은 ‘웃는 얼굴 표정이 나오지 않게 스카프(버프)를 착용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한 간부는 메시지를 통해 ‘물이 장화에 들어가면 보행할 수 없다’는 어려움을 이야기했지만, ‘얘기하고 오겠다’던 중대장은 이후 답이 없었다.
지난달 18일 밤 단체 카톡방에 내려진 지시 내용. 복장 규정이 전파됐지만 구명조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군인권센터 제공
19일부터 진행된 수중 수색 중엔 갑자기 목까지 물이 차는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고 한다. 팔을 뻗으면 잡힐 거리에서 작업하다 사단장 지시대로 수색은 바둑판식으로 변경됐다. 그러던 중 한 병사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채 상병은 도움을 주기 위해 이동하다가 물에 빠졌다. 같이 작업하던 병사 6명도 물에 빠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나머지는 수영을 하며 강가로 나왔지만 채 상병은 20초 가량 오르내리다 물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센터는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이번 회견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센터는 “해병대 수사단 수사 결과가 발표를 앞두고 갑자기 폐기, 번복되고 경찰에 넘겨진 수사기록이 회수됐다. 정당한 수사를 진행한 수사단장 등은 항명죄도 입건됐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해병1사단장부터 보직 해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지난달 호우 피해 지역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 도중 순직한 해병대 고 채아무개 상병의 유족이 언론에 채 상병의 이름을 보도하지 말 것을 해병대사령부를 통해 요청해왔습니다. 한겨레는 유족의 뜻을 존중하여 ‘채아무개 상병’으로 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