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일대에 통제선이 설치돼 있다. 지난 3일 저녁 같은 장소에서 흉기 난동 사건으로 14명이 다쳤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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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림역에 이어 경기 성남시 서현역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이 이어지면서 법무부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범죄 예방 효과도 없고 수형자의 교화 가능성도 차단하는 ‘보여주기식’ 대안이라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지난 4일 “흉악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을 위해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형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존폐 결정과 무관하게 형법에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도입하는 것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행법상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인 무기형은 복역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되는데,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사면이나 감형이 없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구금의 형을 부과하는 형벌이다. 그동안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사형제 폐지를 위한 대안으로 거론됐으나, 법무부가 사실상 사형제와 병존안을 제시한 것이다.
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범죄의 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런 식의 ‘가장 쉬운 접근’이 범죄 예방을 위한 차분한 논의를 방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덕인 부산과기대 교수(경찰경호과)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범죄 고위험군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인데, 정부가 시민들의 분노를 부추기며 모든 문제를 형벌 기능에 떠맡기고 있다”며 “이런 형벌 만능주의는 처음엔 살인 등 흉악범죄에 국한되겠지만 나중엔 일반범죄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기징역 수형자에게 가석방 기회를 아예 차단하는 것이 교정 관리의 어려움을 부른다는 실무적 우려도 나온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은 “가석방이 없으면 수형자가 올바른 수형 생활을 할 동기를 빼앗게 된다”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도입되면 수형자를 관리하는데 상당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교도관들의 일관된 지적”이라고 했다.
위헌적 요소도 없지 않다. 헌재는 2010년 사형의 위헌성을 다루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대한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헌재는 “사형에 비하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생명을 유지시킨다는 점에서 인도적이라 할 수는 있으나, 역시 자연사할 때까지 수용자를 구금한다는 점에서 사형 못지않은 형벌”이라며 “이는 사형제도와 또 다른 위헌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유럽인권재판소도 2013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유럽인권보호협약을 위반한다고 판단해 여러 나라에 개선 권고를 내린 바 있다.
한편,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사형제 폐지를 위한 ‘과도기적 필요악’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무거운 대체형벌 없이는 사형제 폐지에 대한 여론을 모으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사형제 폐지 동의 비율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 대체형벌 도입을 전제로 할 경우 20.3%에서 67%까지 급증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무기징역은 복역 20년만 지나도 가석방이 가능하게 되어있어서 사형의 대체형벌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사형 폐지를 위한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6년째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사형폐지국’인 상황에서, 실질적 최고형인 무기징역의 가석방 기준을 엄격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형법 제72조는 무기형은 복역 20년, 유기형은 형기의 3분의 1이 지난 뒤 행정처분으로 가석방할 수 있다고 정한다. 유기형은 잔여 형기가 10년 이상이면 가석방이 불가능하다는 단서 조항이 있어서, 40년형을 선고받은 경우 30년까지는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무기수는 20년만 복역해도 가석방 심사를 받을 수 있어서 무기수의 최소복역 기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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