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마을 느티나무. 2m 넘는 아름드리 줄기가 땅을 기어가며 자랐다. 김양진 기자
* 의령 느티나무 (2) 저수지에 100년 수장된 5t 나무, 불상 1천개로 다시 태어나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큰 나무가 많기 때문일까.(의령군엔 세간리 은행나무, 현고수 느티나무, 백곡리 감나무, 성황리 소나무 등 천연기념물 노거수가 네 그루나 있다.) 동곡 법사 말을 들어보면 이쪽 지역에서 난 인물도 많다.
두곡천을 따라 박사만 50명이 넘고, 영화 <말모이>의 실제 인물인 이극로(1893~1978)는 아래쪽 두곡리 출신이다. 삼산마을의 도로명주소도 ‘고루’(이극로의 호)에서 딴 ‘고루로’다. 또 이 마을 북쪽으로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1552~1617)와 독립운동 실업가 안희제(1885~1943)의 생가가, 서쪽으로 삼성 창업자 이병철(1910~1987)의 생가가 있다.
■ 숲 토양 빗물 흡수력, 도시 토양의 25배
“큰 나무가 있는 마을에 큰 인물이 난다고 합니다. 산을 사랑하고 나무를 사랑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있다면, 인심이 좋고 교육을 잘 받았을 테지요. 마을에 주민을 잘 이끄는 어른이 있고 지도자가 있다는 얘기고요. 나무를 훼손하면 벌 받는다고 하는 얘기도 마찬가집니다. 6·25 때 땔감이 모자랐는데 전국에 그 큰 정자나무들이 어떻게 살아남았겠습니까.(지금도 전국에 100살 이상 된 보호수 1만3856그루 가운데 느티나무가 7278그루로 52.5%에 이른다.) 나무는 주변을 절토·복토하고 아스팔트를 덮는 등 개발하면 죽습니다. 그런데 100~200년 나무에 손대지 않도록 가르친 덕망 있는 어른들이 있었고, 큰 나무를 신령스러운 당산나무라고, 사랑할 수 있도록 가르친 거죠. 그런 마을에 인재가 난다는 건 꼭 비과학적이라고 할 순 없겠지요.” 이경준 서울대 명예교수(임학)는 이렇게 설명했다.
2023년 7월13일 경남 의령군 칠곡면 신포마을 느티나무 노거수. 2m 넘는 아름드리 줄기가 땅을 기어가며 자랐다. 김양진 기자
숲 토양의 빗물 흡수 능력(도시 토양의 25배, 국립산림과학원 2020년 조사)이 좋아, 주변에 나무가 많으면 홍수가 방지되고 농사도 잘된다는 것도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 비어가는 마을에 나무마저 위태로운 이 땅에 인물이 계속 날 수 있을까. 의령군 인구는 2만5806명(2023년 6월 기준)으로 경남 지역에서 가장 적다.
갖은 일을 겪은 삼산마을 느티나무와 달리, 잘 자란 느티나무의 고유 수형이 잘 드러난 고목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같은 날 삼산마을에서 차로 서쪽으로 40분가량 가면 신포마을(칠곡면)에 다다른다.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한 그루가 그 자체로 숲이었다. 사방으로 고르고 넓게 수관을 뻗은 고목나무 구름 한 폭이 서 있었다. 논밭 한가운데 있는 나무는 영락없는 정자나무였다.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2m 넘는 굵은 가지 3개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 애썼던 것이 평범한 시작이었을 것이다.
이미 햇빛을 차지한 위쪽 가지를 피해 팔(가지)을 뻗었다. 그렇게 물과 양분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여러 번 오갔다. 여기에 마을 주민들의 보호도 보탬이 됐을 것이다. 그렇게 지금의 웅장한 신목이 됐다. 키 24m, 가슴높이 둘레 8.4m, 잎과 가지가 뻗은 수관 폭은 무려 가로세로 45m에 이르렀다.(박정기 활동가 측정) 때마침 매미들이 볼륨을 높였다.
신포마을 느티나무. 2m 넘는 아름드리 줄기가 땅을 기어가며 자랐다. 김양진 기자
2023년 7월13일 경남 의령군 칠곡면 신포마을 느티나무 노거수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양진 기자. 2m 넘는 아름드리 줄기가 땅을 기어가며 자랐다. 박정기 제공
“언제 심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김녕 김씨가 정착해 집성촌을 이룬 게 560년 전이라 그때 심은 것으로 봅니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이렇게 가지가 완전히 내려오진 않았는데,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점차 내려와 지금은 저렇게 땅에 닿았네요.”(이규용(66) 신포마을 이장)
그런데 이규용 이장의 말을 들어보니, 신포마을도 개발 압력을 무탈하게 넘긴 것은 아니었다. 마을 어귀의 300살 된 동구나무 팽나무 두 그루도 이 느티나무와 함께 당산나무로 섬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 길을 확장하고 포장하면서 시름시름 앓다가 20여 년 전 말라 죽었다. 가구수도 1970~1980년대 100여 가구에서 현재는 42가구로 절반 이상 줄었다.
그럼에도 나무를 신성시하는 정서는 여전하다. 이 이장은 “어려서부터 저 나무를 함부로 하면 해가 돌아온다고 해서 우리 마을에 저 나무에 손대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사한 가지를 모아둬도 주민들이 일절 가져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 너른 수관, 도시에선 환영 못 받고
나무 지킬 마음은 있어도 사람이 없는 농촌과 달리, 도시에서는 또 다른 이유로 느티나무가 살기 팍팍하다. 너른 수관 탓에 건물에, 전봇대에, 차량 통행에 치인다고 곧게 자라는 벚나무·이팝나무로 대체되기 일쑤다.
“열매보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머리와 어깨와 다리에/ 가지와 줄기에/ 주렁주렁 달았다가는/ 별 많은 밤을 골라 그것들을/ 하나하나 떼어 온 고을에 뿌리는/ 우리 동네 늙은 느티나무들” ―신경림, ‘우리 동네 느티나무들’ 일부분
의령(경남)=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나무 전상서: 나무를 아끼고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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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13일 경남 의령군 지정면 두곡저수지 앞 느티나무 노거수 두 그루 아래가 어두컴컴하다. 김양진 기자
의령 두곡저수지 앞 느티나무의 2m 정도 굵기의 가지들. 100년 전 둑을 축조할 때 5m 이상 흙이 쌓아 올려져 줄기가 보이지 않는다. 김양진 기자
경남 의령군 지정면 한 불사의 관음보살과 아수라. 수백 년 당산나무로 살다가 백 년가량 수장된 느티나무를 건져내 만든 우백현 목조각장 작품이다. 김양진 기자
경남 의령군 지정면 한 불사의 관음보살. 수백 년 당산나무로 살다가 백 년가량 수장된 느티나무를 건져내 만든 우백현 목조각장 작품이다. 김양진 기자
경남 의령군 지정면 한 불사의 관음보살. 수백 년 당산나무로 살다가 백 년가량 수장된 느티나무를 건져내 만든 우백현 목조각장 작품이다. 김양진 기자
경남 의령군 지정면 한 불사의 각종 불상. 수백 년 당산나무로 살다가 백 년가량 수장된 느티나무를 건져내 만든 우백현 목조각장 작품이다. 김양진 기자
2023년 7월13일 경남 의령군 지정면 한 불사의 각종 불상. 수백 년 당산나무로 살다 백 년가량 수장된 느티나무를 건져내 만든 우백현 목조각장 작품이다. 김양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