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콘셉트로 꾸며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 대마초 조화가 보라색 조명을 받고 장식돼 있다. 김가윤 기자
이 카페의 대표 메뉴는 ‘대마리카노’(대마+아메리카노)와 ‘대마씨앗 케이크’. 지난 14일 찾은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엔 대마초 조화가 몽환적인 보라색 조명을 받고 곳곳에 장식돼 있었다. 카페 직원은 환각성분이 제거된 햄프씨드(대마씨앗)를 이용했다며 “합법이고 안전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외견상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는 탓에 실제 경찰이 현장 점검을 한 적도 있다. 카페를 이용한 김아무개(29)씨는 “합법이라니 안심은 되지만 마약 하는 곳에 몰래 온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선 “누가 봐도 대마초 재배 공장 콘셉트다”, “마약 이미지는 친근해지면 안 된다”는 등의 반응도 나온다.
마약을 콘셉트로 삼은 가게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 종로구의 한 맥줏집은 ‘누구나 꿈꿔왔던 그 맛, 경험하라, 합법적으로’라는 홍보 문구를 내세워 ‘대마초 맥주’를 소개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에도 ‘대마 커피’를 전문으로 파는 카페가 있다. 모두 ‘불법’인 대마를 합법적인 방법으로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게 홍보 전략이다. 23일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개방시스템을 보면, 상호에 ‘마약’이 들어간 음식점만 전국에 194곳이 있다.
이런 노골적인 ‘마약 마케팅’에 학부모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둔 한 학부모는 “아직은 아이가 마약을 무서워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마약’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메뉴를 ‘맛있는 것’이라고 생각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신상도초 학생들은 이달 초 “무서운 마약을 친근하게, 멋있게, 맛있어 보이게 만든다”며 ‘마약 마케팅’을 멈춰 달라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청소년 마약 중독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마약을 친숙하게 만드는 마케팅에 대해 지방자치단체도 관리에 나섰지만 정작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3월 ‘마약류 상품명 사용 문화 개선에 관한 조례’를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제정하며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등 마약 마케팅의 실태를 조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한겨레>에 “실태조사 계획이 없다. 조례를 근거로 자치구별로 계도는 할 수 있지만 강제성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관련 법률이 미비해 지자체와 함께 마약 표현 사용 자제를 권고하는 수준이다. 국회에선 식품 등에 마약과 그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한 표시 또는 광고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수개월째 심사 중이다.
울산 등 다른 지자체도 관련 조례를 제정하려고 하지만 강제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소비자학)는 “상품명에 ‘마약’을 쓰면 1단계는 호기심이지만 그다음 단계는 친숙함으로 가게 되고 마약에 대한 경계심이 떨어진다”며 “소상공인의 반발이 있더라도 이를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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