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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회사 ‘보복 고소’에 검찰 ‘선택 기소’…10년간 벼랑에 선 직장인

등록 2023-07-06 06:00수정 2023-07-06 11:15

SK컴즈-직원 법적 분쟁 들여다보니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보복.” 에스케이(SK)커뮤니케이션즈가 ㄱ(49)씨를 상대로 낸 형사고소를 두고 법원이 판결문에 쓴 단어다. 회사가 ㄱ씨를 ‘손절’한 지 사실상 10년이 넘었지만, 법적 대응은 여전히 거세다. 회사를 위해 밤낮없이 ‘일’했을 뿐이라 ㄱ씨는 억울하다. 무엇보다 검찰의 ‘선택적 기소’가 납득하기 어렵다.

명절선물·골프 접대…우수사원 표창도

ㄱ씨는 처음에는 ‘잘 나가는’ 직원이었다. 명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대외홍보팀에서 일하던 그는 SK컴즈 쪽 제안을 받아 2007년 1월 대외협력팀 과장으로 경력 입사했다. 당시만 해도 SK컴즈는 ‘잘 나가는’ 회사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 ‘싸이월드’에 더해 ‘네이트온’까지 운영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대외협력’은 맨입으로 안 됐다. 청탁금지법도 없던 그 시절, 규제기관 공무원 호주머니에 현금 수십만원을 찔러주는 게 관행이었다. 고스톱에서 일부러 져 돈을 ‘잃어주기’도 했다. 자녀에게 선물로 주라며 사이버머니 ‘도토리’ 상품권을 주는 건 일상이었다. 명절 선물은 기본이고 골프 접대, 룸살롱·안마시술소 접대도 드문 일은 아니었다. ‘부정 이슈 방지’ 능력을 인정받은 ㄱ씨는 2011년 우수사원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부정 이슈’는 끝이 없었다. 2008년에는 싸이월드 회원 아이디 600만건이 유출돼 스팸 발송에 사용된 사건이 발생했다. 네이트온 메신저 피싱으로 피해자 수천명이 생기기도 했다. 포털 네이트와 엠파스에서 계정 수백만개가 유출되고, 싸이월드 회원 3500만명 개인정보가 해킹되는 일도 발생했다. 정부기관과 ‘협력’이 필요한 일이 많아졌다.

■ 부족한 대외협력 예산에 비자금 조성해 ‘로비’

결국 한해 수억원에 달하는 대외협력 예산이 부족했다는 게 ㄱ씨 설명이다. 당시 팀장이던 ㄴ씨가 로비에 쓸 비자금 조성을 지시했다고 한다. 법무법인에 법률자문을 의뢰한 뒤 실제 법률자문료보다 더 높은 금액을 청구해 차액을 ㄴ씨 계좌로 돌려받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인쇄물 제작을 의뢰한 뒤 차액을 ㄱ씨 계좌로 돌려받기도 했다. 2009년부터 3년 동안 조성한 비자금이 6천만원이 넘었다. ‘더는 이렇게 못하겠다’는 ㄱ씨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2012년 초, SK컴즈 경영진이 바뀌면서 대대적인 감사가 이뤄졌다. ‘비자금 조성’이 밝혀져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ㄴ씨는 계좌 내역을 제출하며 ‘비자금 대부분을 로비에 썼고 10% 정도만 개인적으로 사용했다’고 실토했다. 회사는 ‘비자금 조성 및 향응’ ‘이해관계자 금품 접대 제공’ 등 이유로 ㄴ씨에 사직을 권했고 120만원을 회사에 반환하고 그는 이직했다. ㄴ씨와 달리 비자금을 로비에만 썼다고 주장한 ㄱ씨는 회사에 개인계좌를 볼 정당한 권한이 없다고 버텼다. 고난이 시작됐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찰 깃발이 태양 아래 펄럭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찰 깃발이 태양 아래 펄럭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계속되는 법적 분쟁…검찰 ‘선택적 기소’까지

징계 대신 기약 없는 대기발령이 이어졌다. 2012년 11월 출근하되 업무는 주지 않는 ‘출근대기명령’이 내려졌다. 1년 뒤 ㄱ씨에게 별도 대기발령 해제를 통보할 때까지 집에 있으라는 자택 대기발령으로 회사 지시는 바뀌었다. 대기발령 동안 임금은 30% 줄어들었다. 5년 뒤인 2017년 6월에서야 회사는 ㄱ씨에게 출근하라고 명령했다.

진정한 의미의 ‘복직’은 아니었다. 회사는 인력팀으로 ㄱ씨를 보냈다. 화장실 순찰, 비데 점검, 휴지 교체 등 업무를 맡게 됐다. 업무 태도 불량 등 이유로 낮은 점수를 받아 연봉이 다시 10% 삭감되기도 했다. 회사는 2019년 ㄱ씨가 팀장 업무지시를 따르지 않고 상사들을 조롱한다며 해고를 의결했다.

‘직장 갑질’이라 판단한 ㄱ씨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 3건을 제기했다. 두 건은 패소했다. ‘인력팀 발령 뒤 이뤄진 인사평가가 부당하다’는 ㄱ씨 주장을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2019년 업무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며 해고된 것이 ‘무효’라는 ㄱ씨 주장도 기각했다. 모두 회사의 정당한 권한이라는 취지다.

그러나 ‘장기 대기발령이 부당하다’는 ㄱ씨 주장은 법원이 인정했다. ㄱ씨에 대해 회사가 징계절차나 형사 절차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볼 사정이 없는데 3년 넘게 자택 대기발령을 유지한 게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회사의 행위는 오로지 ㄱ씨를 해할 의도로 고의로 이뤄진 것이며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라고 판단했다.

■ “왜 ㄱ씨만 기소”…법원 의문 표하기도

회사의 ‘맞대응’이 이어졌다. 회사는 2019년 ㄱ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2021년에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10년 전 ‘비자금 조성’ 행위에 대해 책임지라는 주장이었다. 법원은 민사소송에서 ㄱ씨가 회사에 2천만원가량을 돌려줘야 한다면서도 “ㄱ씨가 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 분쟁이 생기며 이에 대한 보복적 조치로 이뤄진 것으로 볼 여지가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회사의 고소에 대해 검찰은 이례적인 결론을 냈다. 서울북부지검 형사1부(부장 박상진)는 ㄱ씨와 팀장 ㄴ씨가 공모했다는 점이 명백하다면서도 회사가 고소한 ㄱ씨만 2021년 6월 재판에 넘겼다. 대신 공소장에는 ㄴ씨와 공모했다는 배임 금액 6600만원가량을 모두 넣었다. 공범 중 한 명만 기소하면서 배임 금액만 두 명 분을 쓴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재판장이 “왜 ㄴ씨는 기소하지 않았느냐”고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수도권 한 부장검사는 “공소장에 공범 둘을 적시했는데 한 명만 기소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고 했다. 또 다른 부장검사는 “재판부가 언급할 정도면 이례적인 일이다. 공범이어도 가담 정도가 미미하면 입건이 안 될 수 있지만, 이 경우는 달라 보인다”고 했다. ‘왜 ㄱ씨만 기소했는가’라는 질문에 사건을 맡은 박상진 수원지검 안산지청 차장검사는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ㄱ씨를 재판에 넘긴 검사는 “통화가 어렵다”고만 전했다.

SK컴즈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갑을’ 프레임 때문에 ㄱ씨가 회사에 탄압받는 모양새가 됐다. 개인 비리 행위에서 출발한 일이라 소송을 통해 (진상을) 밝히는 중”이라고 했다. 또한 “본인의 일방적 주장이 많아 ㄱ씨가 패소한 소송도 많다”고 덧붙였다. ‘보복고소’를 적시한 법원 판결에는 “재판부 일방적 판단으로 인정할 수 없는 내용이라 다투고 있다”며 “재판 과정에서 ㄱ·ㄴ씨가 계좌를 통해 돈을 주고 받은 흔적을 보게 돼 고소한 것”이라 말했다. ‘로비자금이 부족했다’는 ㄱ씨 주장에는 “접대비가 부족하면 지급하는 정식 절차가 있다”고 반박했다. 다만 ㄱ씨는 “접대비가 부족할 때 서로 돈을 전달한 것뿐”이라며 “로비자금에 필요한 현금까지 정식 절차로 지급하는 곳이 어디 있는가”라며 반박했다.

■ “계속된 회사의 법적 대응 가혹하다”

회사에서 쫓겨난 ㄱ씨는 배달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재판이 많아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직장을 구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지난 2월 허리를 다친 뒤로는 배달일도 제대로 못해 생계가 막막하다. 일부 소송에서 이겨 회사에 배상금을 받았지만, 다른 소송에서 져서 토해내는 돈과 소송비용을 합쳐보면 사실상 손해다. 그런데도 싸움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ㄱ씨는 “내가 했던 업무가 잘못인 건 알지만 4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서 저항할 힘이 없었다”며 “‘바닥’이라 더 떨어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계속된 회사의 법적 대응이 가혹하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오는 13일에 ㄱ씨의 ‘업무상 배임’ 혐의 1심 선고가 나온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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