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는 김포공항 고도제한으로 재산권 침해를 당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많은데, 밀라노 쎄그라떼(Segrate)시는 비슷한 문제점이 없습니까?”(조기만 서울 강서구의회 의원)
“그러한 주민불편, 민원이 없습니다.”(이탈리아 밀라노 쎄그라떼 시청 관계자)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지난 2월 이탈리아 밀라노(광역시)에 있는 쎄그라떼 시청. 6박8일 간 이탈리아에서 ‘공무국외출장’(해외연수) 중인 강서구의회 의원들이 공항 고도제한 문제 논의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쎄그라떼시 관내에 공항이 있는 만큼, 강서구와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을 거라 보고 잡은 일정이었다.
면담에 나온 시 관계자가 ‘우리는 문제가 없다’고 답하자 최동철 강서구의회 의장이 당황한 듯 “왜 문제가 없냐”고 되물었다. 배석한 한국 영사관 관계자는 “이탈리아는 문화유적지, 역사적 전통 등의 영향으로 국토의 90%가량이 고도 제한을 받고 있다”며 “국민 대부분이 공항 문제에 큰 관심이나 불만이 없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연수단은 결과보고서에 “고도제한 완화 해법에 대한 큰 수확은 없었다”고 썼다. 강서구의회 관계자는 “사전조사가 구체적으로 될 수 없던 상황에서 출발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종식되면서 한동안 중단됐던 지방의회 국외출장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27일 기준 서울 25개구 기초의회 중 공무국외출장을 다녀왔거나 갈 계획이 있는 곳은 17곳에 달한다. 대다수 구의회가 그간의 ‘외유성 해외순방’ 논란을 의식한 듯 기관 방문 일정을 늘렸지만, 누리집에 공개된 결과보고서를 보면 구색 맞추기 수준인 경우가 여전히 많다.
동작구의회는 지난 3월 7박9일 일정으로 서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선진국의 방재시설을 보고 배우겠다’며 항만 시설(벨기에)과 해일방벽(네덜란드)을 찾았다. 하지만 의원들 사이에서도 방문 기관들이 출장 목적에 맞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동작구는 지난해 집중호우로 침수피해가 컸는데 ‘해일’, ‘항만’과는 무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출장 닷샛날 벨기에 엔트워프의 항만시설을 방문했다. 현장 실무자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한 재난교육도 없고, 자연재해도 없다”고 답했다. 다음날 찾은 네덜란드의 매스란트케링 해일방벽에서도 시설의 제원이나 작동 원리 등 인터넷 검색으로도 알 수 있는 내용만 들을 수 있었다. 동작구의회 관계자는 “입지나, 환경 자체가 동작구와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며 “의원들도 (장소가) 잘못되지 않았나 항의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출장 일정을 의회가 직접 짜지 않고 민간여행사에 맡기는 관행이 부실 연수를 낳는 원인 중 하나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월 마포구의회 출장 심사위원회에서는 “‘의회 전문여행사’ 같은 건 세상에 없다. 전문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출장 일정이 적절한지 따져야 할 사전심사도 유명무실하다. 행정안전부 권고에 따라 지방의원들의 해외출장은 다수의 민간인으로 구성된 심사위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서울 17개 구의회 공무국외출장안은 모두 만장일치로 의결됐다. 기초의회 의장이 심사위원을 임명하는 데다, 심사 대상인 구의원들도 심사위에 참여해 내실 있는 심사가 이뤄지기 힘든 구조다.
정지웅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장은 “제대로 된 견제가 안 되기 때문에 엉터리 해외출장이 계속 이뤄지는 것”이라며 “별도 심사 기구를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설치해 심사하게 하고, 부적절한 출장이라면 사후에라도 비용을 환수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