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하 시인(이상백)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실은 1987년 사회과학전문지 <녹두서평> 창간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김광동)는 21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열린 제57차 전체위원회에서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 수사관들이 1987년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실은 출판사 관계자에게 행한 간첩조작 의혹 사건 등 34건에 대해 조사개시를 결정했다.
1987년 사회과학전문지 <녹두서평> 창간호(3월)에 실린 이산하 시인(본명 이상백)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은 한국사회에 제주 4·3학살의 실상을 처음 폭로하며 충격을 준 작품이었다. 치안본부는 이산하 시인 검거를 위해 추적수사를 하던 중 녹두출판사 관계자들로 수사를 확대해 당시 전무 겸 편집장이었던 신형식씨를 불법연행·구금하고 가혹행위를 해 간첩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진실화해위는 기록상 신청인에 대한 검거방식은 긴급구속일 개연성이 상당하며, 이후 신청인에 대한 영장도 사후영장이 아닌 통상의 사전영장인 점,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음에도 즉시로 집행하지 않은 점, 신청인이 공판과정에서 일관되게 수사관의 자백 강요에 의해 자백을 하게 되었다는 진술이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조사개시를 결정했다 .
이 사건으로 1987년 4월 녹두출판사 김영호 발행인과 신형식 전무 겸 편집장이 국가보안법 혐의로 검거·구속되고, 이산하 시인은 도피했으나 11월 체포돼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진실화해위는 이밖에도 1981년경 일본 오사카로 여행을 다녀온 뒤 조총련을 만나 간첩행위를 했다는 허위 밀고를 당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고 김아무개씨 사건과 전남 영광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등에 대해서도 조사개시 결정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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