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정보기관인 보안사(현 국군방첩사령부)가 민간인을 사찰하고 수사하고 고문하고 간첩으로 조작하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 10월27일 오후 한국외국어대에서 민가협 주최로 열린 '보안사 해체 및 양심수 석방 촉구대회'에 참석한 의문사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의문사한 자녀들의 사진이 든 피킷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진실화해위원회)는 21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열린 제57차 전체위원회에서 ‘보안사 불법구금․고문 등 간첩조작 의혹사건’에 대해 중대한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이 사건은 일반인을 수사할 권한이 없는 보안사(현 국군방첩사령부)가 1974년 10월 북한 공작원에 포섭돼 그 지령을 수행했다는 등의 혐의로 한국기계공업주식회사(방위산업체) 직원 고 박아무개씨를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폭행 등 가혹행위를 하고 허위자백을 받아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유죄판결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보안사는 1974년 11월5일 일본을 거점으로 국내의 정치·사회·학원·군수산업 분야에 침투를 기도해온 ‘재일거류민단’ 동경본부 부단장 진아무개씨를 주범으로 한 간첩 8명과 이런 사실을 알면서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관련자 10명을 검거하고 이들 가운데 13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박씨는 당시 발표된 간첩 명단에 포함됐다. 이 사건 관련 박씨의 공동피고인 이아무개씨는 2017년 12월13일 재심을 청구해 2018년 11월1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보안사가 불법감금과 가혹행위로 이씨에게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공동피고인 박아무개씨도 2018년 12월 2일 재심을 청구해 2023년 5월18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진실화해위는 피해자에 대한 간첩조작 및 폭행․가혹행위 등은 피해자의 헌법상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고 적법절차 원칙을 위반한 사안으로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국가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와 조작의혹 사건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대해 수사․재판 과정에서의 불법구금, 가혹행위 및 사건조작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하여 피해자의 유족에게 사과하고 재심 등 법적인 구제와 피해회복 및 명예회복 조치를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밖에도 57차 전체위원회에서 전남 진도 및 충남 금산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경남 양산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사건(1), 경북 안동·영양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1), 3·15의거 시위 참여 확인 사건(심OO 외 6건), 3·15의거 사망 등 인권침해 사건(고 김OO 외 14건) 등에 관해 진실규명 결정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