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지난 4월26일 오전 서울 원효대교 북단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주 최대 69시간제의 폐기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늦은 나이에 첫 직장을 얻고, 한창 돈벌이할 땐 어느 나라 국민보다 장시간 노동을 하며, 그럼에도 노후에 일자리를 놓지 못한다.
황규성 한신대 연구교수가 분석한 한국인의 ‘생애 노동시간’이다. 이런 분석이 없어도 한국인이라면 대체로 체감하는 대목일 것이다. 다만 이런 우리의 생애 노동시간은 외국, 특히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는 어떨까? 황 교수가 한국인의 ‘생애 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주요국가와 비교한 데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였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생애 노동시간을 크게 셋으로 나눴다.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 이행하는 노동시장 진입기 △한창 돈벌이 노동에 종사하는 시기인 돈벌이 활동기 △그리고 노동시장에서 퇴장하는 시기인 은퇴기다. 이어 삼분한 생애 노동시간이 우리와 스웨덴, 미국, 독일 등 오이시디 소속 주요 15개국과 얼마나 다른지를 비교했다.
14일 황 교수의 분석 결과를 입수해 살펴보니, 한국인은 생애 전반에 걸쳐 ‘시간 빈곤’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은 대체로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후 내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노후에도 일하느라 자신만의 여가를 충분히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는 한국 사회는 돈벌이 활동기뿐만 아니라 ‘생애에 걸쳐 시간이 가난한 피로사회’라고 결론지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한국 청년은 첫 직장을 얻는 ‘노동시장 진입기’ 자체가 매우 늦다. 오이시디 통계에 따르면, 15~24살 한국 청년의 고용률(2021년 기준)은 25.2%였다. 10명 중 2.5명 정도만 취업했다는 뜻이다. 같은 연령대 오이시디 국가 청년들의 고용률 평균은 39%에 이르렀다. 15개국 가운데 이 연령대의 고용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네덜란드(62.5%)였고, 이어 영국 52.3%, 노르웨이 49.3%, 독일 48.1%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보다 고용률이 낮은 나라는 이탈리아 16.8%, 스페인 20.7% 등 주로 남유럽 국가였다. 이는 한국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이 외국보다 매우 늦다는 걸 시사한다.
15~24살 한국 청년의 고용률(2021년 기준, 오이시디)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배경은 25~34살 고등교육 이수율(2020년 기준)에서 확인된다. 한국 청년의 이 비율은 무려 69.8%로, 비교 대상 15개국 가운데 단연 1위이다. 오이시디 평균(45.5%)에 견줘도 월등히 높다. 한국 청년의 상당수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까지도 학업이나 취업난에 따른 구직 장기화로 졸업을 유예하고 학교에 머무는 상황을 반영한다.
직장에 들어가 활발히 돈을 버는 시기인 ‘돈벌이 활동기’의 한국인 고용과 생애 노동시간은 어떨까? 25~54살 고용률(2020년 기준)을 비교해보니, 한국(74.9%)은 오이시디 평균(76.2%)보다 조금 낮았다. 스웨덴 85%, 핀란드 82.4%, 독일 84%, 프랑스 80.8% 등 북유럽과 서유럽 복지국가는 대부분 80% 이상이었다. 이탈리아 69.6%, 스페인 73.1% 등 남유럽 국가는 한국보다 낮았다.
눈여겨볼 부분은 25~54살 주당 노동시간(2020년 기준)이다. 한국은 15개국 가운데 가장 긴 41.8시간을 기록했다. 반면 오이시디 평균은 37.8시간이었다. 한국인이 주당 평균 4시간 더 일하는 셈이다. 주당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네덜란드로 33.3시간이고, 40시간이 넘는 나라는 벨기에(41.9시간)와 포르투갈(40.4시간)뿐이다.
‘주당 50시간 이상 장시간 일하는 취업자의 비중(2022년 기준,오이시디)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15~64살 생산가능인구 가운데 ‘주당 50시간 이상 장시간 일하는 취업자의 비중(2022년 기준)’을 추가로 살펴보니, 한국은 전체 취업자의 20%로, 오이시디 평균(13.6%)보다 6.4%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이시디 소속 국가 국민 가운데 남자는 평균 63.8살, 여자는 62.4살이면 노동시장을 떠난다. 이른바 ‘은퇴기’에 들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경우, 남성은 65.7살, 여성은 64.9살이 돼야 은퇴한다. 물론 70살이 넘어서도 일하는 노인도 적잖다. 서구 주요 국가에 견줘 은퇴기 역시 아주 늦는 것이다.
실제 65살 이상 경제활동 참가율(2022년 기준)을 보면, 오이시디 평균이 15.3%인데 비해 한국은 갑절인 35.3%에 이른다. 그 다음으로 미국의 65살 이상 경제활동 참가율이 19.4%, 독일 7.5%, 프랑스 3.4% 등 대다수 국가가 10% 이하다. 한국 노인들은 가난해 65살의 은퇴기나 그 후에도 상당수가 돈벌이 노동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반영한 수치다.
65살 이상 경제활동참가율(2022년 기준, 오이시디)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황 교수는 한국인의 생애를 노동시간의 눈으로 보면 “한창 일할 나이에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취업준비생은 그 장시간 노동에 기를 쓰고 들어가려고 하며, 늙어서도 일을 놓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사회적 안식년 제도 도입 등 시간 부자 사회를 향한 쉼표의 제도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