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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4·3학살 미국 책임, 증거 위주로 철저히 진실 밝혀야”

등록 2023-06-01 19:28수정 2023-06-02 02:35

[짬] 4·3평화상 받은 에번스 오스트레일리아 전 외교부 장관

제5회 제주4·3평화상을 받은 개러스 에번스 오스트레일리아 전 외교부장관. 제주4·3평화재단 제공
제5회 제주4·3평화상을 받은 개러스 에번스 오스트레일리아 전 외교부장관. 제주4·3평화재단 제공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미국 정부도 한국 정부처럼 제주4·3과 관련한 역사적 잘못에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미국의 중요한 역할이 될 것입니다.”

31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8회 제주포럼 첫날 제주4·3연구소가 주관한 ‘제주4·3모델의 세계화-진실, 화해, 연대’ 세션을 참관한 개러스 에번스 오스트레일리아 전 외교부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날 제주4·3평화재단이 주는 제5회 4·3평화상을 수상했다. 에번스 전 장관은 캄보디아 내전을 해결하고 평화를 정착시킨 파리 평화조약 체결에 기여하고, 캄보디아 문제 해결을 계기로 국가폭력에 의한 대량학살이 발생할 경우 민간인 보호를 위해 2005년 유엔이 개입할 수 있도록 규정한 ‘보호책임’을 국제규범으로 만들었으며, 핵무기 확산 방지와 화학무기 금지 등 평화를 위한 활동도 펼친 공로로 4·3평화상을 받았다. 4·3평화상 특별상은 1990년대 <제주민중항쟁사>와 <동백꽃 지다> 연작화를 통해 4·3을 알리는 데 기여한 강요배 화가가 받았다.

에번스 전 장관은 이날 “제주에서 일어났던 70여년 전의 비극적인 사건은 국제사회에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 더 알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제주에서 발생한 대량학살을 기억하지 않고, 국가와 국제사회의 의식 속에 뚜렷하게 각인되지 않는다면 과거의 공포는 다시 반복되고,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예방과 대응 전략을 모색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에서 인도에 반한 범죄의 진상을 밝히려는 움직임이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한 에번스 전 장관은 “4·3의 진실과 책임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이를 통해 국제사회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4·3과 관련해)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역사적 증거에 따라 명시돼야 하고,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명확하게 책임이 가려져야 한다”며 “미국은 책임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철저하게 증거를 중심으로 진상을 규명해 윤리적, 도덕적으로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에번스 전 장관은 과거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가 1971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한 사례를 들며 “독일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끊임없이 사과하고, 세계는 이를 기억하고 있다. 일본도 과거 끔찍했던 식민지 국가에서 자행한 만행에 대해 독일이 사과했던 것과 같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참배했던 것과 같이 바이든 대통령도 70여년 전의 제주4·3에 대해 비슷한 뜻을 표명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미국은 존중받는 국가가 될 것이고, 한-미 동맹은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고 밝혔다.

캄보디아 평화정착 기여 등 공로
2일 제주포럼서 오 지사와 대담
특별상은 ‘민중미술가’ 강요배 작가

“미국은 책임 잘 인정하지 않아
책임 받아들일 때 존중받을 것
제주4·3 국제사회에 더 알려야”

그는 기자회견에서도 “4·3 당시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이뤄진 학살에 대해 미국 정부에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4·3에 대해 책임을 갖는 것처럼 미국 정부가 이를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밝혀나가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화해”라고 강조했다.

에번스 전 장관은 수상 소감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최악의 상황을 기억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대량학살, 인종 청소나 인도에 반하는 범죄 또는 주요 전쟁 범죄가 세계 어디에서든지 주권국가의 국경 안에서 자행되거나 위협받을 때 세계는 이를 남의 일로 치부하지 말고 자기 일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도 언급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오스트레일리아나 기타 국가보다 폭풍의 눈에 더 가까이 있다. 끊임없이 증가하는 북한의 핵무기 능력과 끊임없는 수사적 호전성으로 한국이 자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릴 것”이라며 “그러나 그런 일이 발생하면 세계 비확산 체제와 국가의 국제적 명성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정상회담에서 핵 억제력에 대한 약속을 강화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다”라며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역점을 둬야 할 것은 엄청난 위험을 수반하는 확장된 핵 억제력이 아니라 확장된 재래식 전쟁 억제력”이라고 강조했다.

에번스 전 장관은 “세계적으로 평화문화를 구축하려면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려는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그것이 국가가 진실을 부정하고 탄압하던 긴 세월 제주 사람들을 지탱하며 마침내 민주주의와 정의를 승리로 이끈 정신이다. 진실, 화해, 국제적 연대의 모델을 보편화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제주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2일 오후 제주포럼 폐막 세션에서 오영훈 제주지사와 ‘함께 만들어가는 평화문화’를 주제로 대담한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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