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역삼1동에 설치된 생활안심구역 관련 시설물.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골목 안쪽을 비춰주는 거울형 조명, 조명이 달린 화단 펜스, 조명 달린 주소지 안내판, 반지하 방범창.
“이전에는 길이 어두워 사람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어요. 이제 어떤 차림새인지 보이니 안심이 되는 것 같아요.”
밤늦게 퇴근하는 서울 강남구 역삼1동 주민 강아무개(24)씨는 지난해 말부터 동네 골목 구석마다 조명이 설치되면서 한시름 놓인다고 했다. 이전과 비교하면 동네가 전반적으로 밝아졌다. 여성 1인 가구가 밀집한 역삼1동이, 서울 강남경찰서와 강남구청이 함께 진행하는 ‘생활안심디자인’ 사업에 선정돼 작년 말 정비를 마친 덕이다. 이 사업은 2021년 같은 구 논현1동에서 처음 진행했다.
지난 3월 말 찾은 역삼1동의 빌라들 문 앞에는 밤늦은 시간에도 주소를 단번에 식별할 수 있는 조명 주소 표지판이 집집마다 설치돼 있었다. 강남경찰서 김희정 경장은 “(새 주소 표지판은) 위기 시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고 했다.
이 사업은 그동안 ‘선’에 초점을 맞췄던 범죄 예방 방식을 ‘면’으로 확장했다는 특징이 있다. 지정된 길 외에는 별도의 시설물이 설치되지 않는 ‘안심귀갓길’ 사업의 문제점을 보완한 것이다. 기존 사각지대였던 빌라 안쪽 주차장이나, 건물 사이 막다른 골목길에도 ‘거울형 조명’(뒷사람을 볼 수 있도록 거울과 함께 설치된 조명)을 설치해 시야를 확보했다.
조명 외에도 범죄 예방 시설물이 동네 성격에 맞게 고안됐다. 역삼1동은 주택가와 인근 유흥가가 분리되지 않아 담배꽁초나 쓰레기 등 불법 투기가 많은 것이 늘 골칫거리였다. 또 차량 진입이 많아 불법 주정차 문제도 심각했다. 이에 유흥가에서 주택가로 넘어가는 경계 구간에 ‘여기서부터 주택가입니다’라는 문구가 나타나는 조명을 설치했다. 반지하 창문에는 탈부착할 수 있는 방범창을 달아 타인의 시선을 차단했다. 화단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방지하고자, 조명이 달린 화단 펜스도 설치했다. 불법 주정차를 막는 안내판도 빌라 일부 구역에 놓았다. 주거침입 우려가 큰 논현1동의 경우는 담을 쉽게 넘지 못하도록 하는 회전 파이프를 담벼락 위에 달아 놓았다.
구청이 주민들과 공유회의를 열어 만들어진 사업이라 주민 만족도도 높았다. 구청이 역삼1동 거주민 57명을 상대로 진행한 ‘안전한 주거환경 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냐’는 설문에 39명(68.4%)이 “그렇다”고, 17명(29.8%)이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강남구청 디지털도시과 관계자는 “동네마다 우려하는 범죄의 형태가 다른데, 주민들이 요구하는 시설물을 만들어 만족도가 높았다”고 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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