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성이 정신건강임상심리사가 군에서 자식을 잃은 유가족과 지난 2021년 상담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법무부가 군인과 경찰이 전사하거나 순직했을 때,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한 국가배상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상 ‘이중 배상금지 원칙’에 따라 이들은 관련법에 따라 보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었는데, 국가배상법을 개정해 이를 가능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법무부는 24일 군인과 군무원, 경찰, 예비군 대원이 전사하거나 직무 집행과 관련해 숨져 보상을 받은 경우 유족이 추가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도록 한 국가배상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국가배상법 제2조(배상책임) 1항은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또는 예비군대원이 전사·순직하거나 공상을 입은 경우 본인이나 그 유족이 다른 법령에 따라 재해보상금·유족연금·상이연금 등의 보상을 지급 받을 수 있으면 민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무부는 3항을 신설해 “1항에도 불구하고 유족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을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헌법의 ‘이중배상금지’ 조항과 이를 반영한 국가배상법 조항 때문에 공상으로 숨진 군인과 경찰 등의 유족이 낸 손해배상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무부는 “헌법은 본인의 청구권만 제한하고 있는데, 국가배상법은 유족의 청구권까지 제한하고 있다”라며 “헌법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유족의 위자료 청구 근거를 마련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최근 ‘홍정기 일병 사망’이 법 개정 검토의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2015년 8월 입대한 홍 일병은 백혈병에 따른 뇌출혈로 이듬해 숨졌다. 유족은 군인재해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았지만, 2019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숨졌다’며 국가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지난해 2월 법원은 화해권고를 결정했지만 정부는 화해를 거부했다. 한 장관은 “당시 법 해석으로 유족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러 화해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며 “대신, 법이 바뀔 때가 됐다는 판단에 따라 법 개정을 추진하게 됐다. 소송이 계속 중인 사안에 대해서도 적용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한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국가의 잘못으로 숨진 군인 등의 유족들에 대해 국가가 보상의 폭을 넓힌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법무부의 국가배상법 개정안 발표 이후 군인권센터는 성명을 내어 “유가족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고, 군경 유족을 이중배상금지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법무부의 법 개정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중배상 금지 조항은 과거 박정희 정부에서 월남전 파병으로 사상자가 늘자 국가 재정 부담을 우려해 헌법에 삽입한 조항이다. 위헌법률 심판 등이 제기되었지만 ‘헌법 조항은 헌법재판소의 심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유 등으로 8차례 각하 결정을 받았다. 2018년 3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도 이중배상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개헌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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