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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코인 10억 손실, 법적 복구 실패”…강남 납치살인 공소장 범행동기

등록 2023-05-19 06:00수정 2023-05-19 08:42

‘퓨리에버 코인’ 손실본 뒤 시세조종 지목 당해
온갖 형사·민사 시도…실패하자 살인제안 응한 듯
가상자산(암호화폐) ‘퓨리에버’ 발행업체 모습. 김가윤 기자
가상자산(암호화폐) ‘퓨리에버’ 발행업체 모습. 김가윤 기자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 피해자로부터 자신들이 피해를 입은 손해를 복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납치·살인 사건의 주요 일당들이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검찰은 이번 사건 배후로 지목된 유상원(51)씨와 황은희(49)씨 부부의 범행 동기를 공소장에 이렇게 정리했다. 검찰은 이들 부부가 피해자 ㄱ씨를 통해 투자한 가상자산(암호화폐)으로 최소 10억원 이상 손실을 본 상황에서 시세 조종 세력으로 몰리고, ㄱ씨에 대한 경찰 고소와 민사 소송 등 손실금 복구를 위한 온갖 법적 수단이 실패로 돌아가자 살인을 결심한 것으로 봤다.

18일 <한겨레>가 확보한 ‘강남 납치·살인 사건’ 일당 7명의 공소장을 보면, 이들 부부는 피해자 ㄱ씨와는 애초에 ‘퓨리에버 코인’의 상장으로 수익을 올리겠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 ㄱ씨는 처음에 부부에게 ‘퓨리에버 코인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원에 곧 상장될 것이고, 빗썸 상장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투자 3개월 뒤부터 퓨리에버 코인을 매달 20%씩 분할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제안을 받아들인 부부는 지난 2020년 10월 1억원 상당의 퓨리에버 코인 44만개를 우선 매수했다.

다음달 실제 퓨리에버 코인은 코인원에 상장했고, 가격이 뛰었다. 1개당 2000원으로 상장 직후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이들 부부는 더 큰 이익에 대한 욕심을 냈다. ㄱ씨와 함께 80억원 규모의 ‘블록딜’ 계약에도 참여했다. 블록딜은 가상자산이 거래소에 상장되기 전 코인 발행업체로부터 싼 값에 코인을 대량 매수 계약하는 것을 가리킨다. 대체로 개인이 홀로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기 때문에 대부분 계약을 맺은 뒤, 다른 투자자들까지 끌어들여야 한다. ㄱ씨와 이들 부부는 퓨리에버 코인 매매대금 80억원을 3개월에 걸쳐 발행업체에 전달하기로 했지만, 중간에 가격이 급락하면서 계약 규모에 미달한 30억원밖에 맞추지 못했다.

계약 실패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가리는 시간이 오자, 부부와 ㄱ씨 사이의 본격적인 분쟁이 시작됐다. 개당 1만원대까지 치솟았던 퓨리에버 코인은 380원까지 폭락했다. 이들의 권유로 투자에 뛰어든 사람들은 ‘퓨리에버 코인 폭락 사태의 책임은 코인을 대량으로 매각한 유상원·황은희 부부에게 있다’는 ㄱ씨의 말을 들은 투자자 ㄴ씨는 이들 부부를 추궁했고, 결국 부부는 손해배상 명목으로 4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ㄴ씨에게 전송했다. ㄱ씨 주도로 시세 조종 세력으로 지목된 이들 부부는 ‘ㄱ씨가 퓨리에버 코인 투자자들을 선동하면 또다시 거액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ㄱ씨에 대한 악감정이 더욱 깊어져 갔다.

검찰은 특히 ㄱ씨가 이들 부부 몰래 블록딜 계약을 체결한 퓨리에버 재단에 접촉해 ‘30억원 반환 약정’을 맺으면서 갈등이 격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21년 7월 ㄱ씨는 ‘2020년 11월20일자 블록딜 계약을 상호 간에 종료하고, 재단은 정산금 명목으로 ㄱ씨에게 5억원을 지급하고 이미 재단에 지급된 30억원 상당의 투자금 역시 ㄱ씨에게 반환하는 데 최대한 노력한다’는 내용의 이행합의서를 재단과 작성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이들 부부는 극도로 분노했고, 아내 황씨는 재단 쪽에 ‘블록딜 계약의 실질적인 당사자는 ㄱ씨가 아닌 자신이며 30억원 상당의 투자금으로 지급한 이더리움은 우리 부부에게 지급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들 부부가 최소 1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판단했다. 이들 부부는 ㄱ씨에 대한 경찰 고소와 민사 소송 등 손실금 복구를 위해 온갖 법적 수단을 동원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이들 부부는 ㄱ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ㄱ씨의 코인 채굴용 컴퓨터에 대한 가압류 민사 소송도 제기했지만 ‘혐의없음’으로 불송치되고 법원에서도 기각되는 등 결과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검찰은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그동안의 피해 금액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 부부가 사건 주범인 이경우씨의 살해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공소장에 “유상원, 황은희의 최소 10억 원 이상의 재산적 손실에 따른 ㄱ씨에 대한 극도의 분노 등의 심리를 이용하여 일확천금의 기회를 잡으려는 이씨의 합심에 따라 ㄱ씨에 대한 강도살인 등 범행은 구체적으로 진행됐다”고 적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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