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보건복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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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5명 가운데 1명은 사회적 고립으로 홀로 생활하다가 삶을 마감하는 고독사 위험에 놓여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부는 내년부터 ‘사회적 고립 예방·지원센터’를 두고, 매년 실태조사를 통해 고위험군을 찾아낸 뒤 생애주기별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보건복지부가 18일 공개한 ‘고독사 위험군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11∼12월 표본 조사에 참여한 1인가구 9471명 가운데 2023명(21.3%)이 고독사 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역·성·연령에 따라 무작위 추출한 19살 이상을 대상으로 했는데, 이를 전체 1인가구(717만명)로 환산해보면 고독사 위험군은 약 152만5000여명으로 추정된다. 전체 인구 기준으로는 3% 규모다.
고독사 위험군에 포함된 이들은 △1주일간 사회적 교류 횟수 1회 이하 △하루 평균 식사 횟수 1회 이하 △몸이 아플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없음 등으로 구성된 위험군 선별 문항 10개 항목 가운데 4개 이상 해당한 경우다.
위험군 비율은 주로 40∼60대 중장년층에서 높았다. 50대(33.9%)가 60대(30.2%) 보다 위험군 규모에서 더 높은 수치를 보였고, 40대(25.8%)가 뒤를 이었다. 청년 1인가구는 30대가 16.6%, 19∼29살은 9.7%가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70대 이상 노인 1인가구 중 위험군은 16.2%로 중간 수준이었다. 정부는 앞으로 이장·통장·반장, 부동산 중개업소 등 인적 안전망과 함께 모바일앱 등을 활용해 고독사 위험군을 찾아낸다는 계획이다. 다세대주택, 고시원 밀집 지역 같은 고독사 취약지역 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고독사 위기점검표와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도 개발하기로 했다. 이날 브리핑에 나선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1인 가구 중심의 가족구조 변화와 감염병 장기화로 인한 사회적 고립와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며 “고독사 위험군을 최대한 발굴해 이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정책 기반을 내실화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는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2027년)’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고독사 발생률을 2021년 전체 사망자 100명당 1.06명에서 2027년 1명 밑(0.85명)으로 줄이는 게 목표다. 이날 정부가 첫 발표한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의 핵심은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고독사 위험에 놓인 이들을 파악하고 지원하는 그물을 짜는 것이다. 5년 주기인 고독사 사망자·위험군 실태조사는 내년부터 해마다 한다. 정부는 5년간 3907억여원을 투입키로 했다.
정부는 우선 경찰청·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흩어져 있는 고독사 관련 정보를 별도의 통합 정보시스템을 구축해 모으기로 했다. 위험군 발굴 등은 내년부터 중앙과 지역 ‘사회적 고립 예방·지원센터’를 지정해 맡긴다. 지역의 센터는 사회복지관·가족센터·비영리단체 등에 지정해, 복지서비스 연계를 피하는 고독사 위험군을 관리할 계획이다.
주변에서 사회적 고립가구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아파트(공동주택) 입주자대표회의, 이·통·반장 등 지역 주민과 부동산중개업소 같은 상점을 ‘고독사 예방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양성하고, 이들에게 봉사활동 시간 인정이나 포상 등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1인 가구 스스로 고독사 위험성을 진단해볼 수 있도록 올해 안에 ‘사회적 고립 및 고독사 위기’ 체크리스트도 개발해 보급키로 했다.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기 위해 다세대 주택이나 고시원 밀집 지역 등에 공동체 공간을 마련하고, 사회복지관 평가 때 주민 간 관계망 형성 실적을 확대 반영하는 식으로 유대감을 높이는 계획도 포함됐다.
고독사 위험군엔 생애주기별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살 사망 비율이 높은 청년 위험군(20대 56.6%, 30대 40.2%)엔 정신건강 관리와 취업 지원을 강화한다. 중장년 위험군은 복지 서비스 대상자 선정을 한 번 거부하더라도 지속적인 관리로 참여를 유도하고 재취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노인 위험군 대상으론 방문 의료 서비스를 확대하고 노인 간 상호 돌봄 등을 추진키로 했다. 이기일 1차관은 “일상생활에 문제를 겪는 중장년을 대상으로 돌봄·병원 동행 같은 일상생활 부담을 경감해주는 생활지원 서비스를 새롭게 마련할 계획”이라며 “6월 초에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고독사 위험군을 담당할 전담 인력도 늘려나간다. 현재 229개 시·군·구 고독사 업무 담당자는 251명, 취약계층 발굴부터 복지 서비스 연계까지 담당하는 통합사례관리사는 978명 규모다. 복지부는 통합사례관리사부터 지역별로 수요를 조사해 충원할 계획이다.
한국보다 앞서 사회적 고립 관련 대책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한 영국과 일본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회관계망 지표를 보면,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응답률은 영국이 93%(22위), 일본이 89%(29위)로 오이시디 평균인 91% 안팎이었다. 반면 한국은 80%(38위)에 그쳤다.
영국은 2018년 내각에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해 외로움에 대한 대응을 정부의 공식 업무에 포함하고, 같은 해 ‘외로움 대비 범정부 전략’을 발표했다. 정서적인 측면의 외로움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에서의 고립과 그로 인한 고독사 등까지 정책으로 다룬다. 일본은 2021년 내각 관방청 산하 고독·고립 대책 담당실을 신설하고, 같은 해 ‘고독·고립 대책 중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임재희 김윤주 기자
lim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