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공개한 ‘위르겐 힌츠페터 구술 영상’ 유튜브 화면 갈무리.
“사망자들은 밤에 살해됐으며 군대의 야간투시경을 가지고 조준사격으로 사살됐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야만적인 일이었습니다.”
1980년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독일 공영방송연합(ARD))의 구술 영상 자료가 17일 공개됐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5·18 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아
힌츠페터의 생전 구술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촬영은 지난 2006년 1월26일 독일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30분 분량으로 공개된 유튜브 영상은 광주에서 목격한 참상, 김사복에 대한 일화, 광주항쟁과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등 11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그는 참상을 떠올리며 “끔찍한 장면들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시신들이 놓여있던 홀이 화염에 휩싸였고, 가족들은 관 옆에 서서 절망적으로 울부짖었다”고 말했다. 당시 광주 시민들의 분위기도 생생히 전했다. 힌츠펜터는 “사람들은 서방에서 온 외국인이 취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있었다”며 “관을 열어주고 내가 카메라로 안을 들여다볼 때(들여다봤는데), 끔찍한 일이었다”고 했다.
영화 <택시운전사>로 널리 알려진 고 김사복씨에 대해서도 그는 ‘따뜻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힌츠페터는 “택시 사업이 어려움에 빠지거나, 자기 자신과 가족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을 텐데 광주에 함께 가기로 결정한 것은 용기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그가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는지, 사람들이 제게 설명한 것처럼 간암으로 죽었는지, 혹은 감옥에 구속되고 고문을 통해 죽게 된 것인지 대단히 궁금했다”고 말했다. 힌츠페터는 김사복 덕분에 한국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고 광주로 향할 수 있었다고도 회고했다.
힌츠페터는 ‘사후에 광주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한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매우 아팠을 때, 광주에서 싸웠던 사람들이 묻힌 국립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유를 위해 싸웠던 젊은이들, 항쟁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과 스스로를 동일시했다”고 말했다. 실제 고인의 머리카락과 손톱 일부가 2016년 광주 북구 망월동 5·18 옛 묘역에 안장됐다.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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