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이 15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위원 자격을 정지당했다. 사법당국의 최종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국제올림픽위 위원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특전, 직무 자격을 박탈당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두산그룹 계열사들에 286억원의 비자금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이 돈을 사적으로 빼내 쓴 혐의 등을 사고 있는 박 전 회장을 구속하지 않고 기소했다. 검찰이 내세운 가장 큰 불구속 이유는 ‘국제적인 인물’이라는 것과 ‘국익’이었다. 검찰은 “박 전 회장이 우리 외교의 한 축을 맡고 있고,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와 2009년 국제올림픽위 총회 유치라는 현안이 있는 상황에서 그를 구속하면 국익에 큰 손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국제올림픽위 위원임을 고려했다는 얘기다.
두산그룹 비리를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애초 의견은 달랐다. 검사들은 “박 전 회장을 구속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수백억원의 회사자금을 빼내 쌈짓돈처럼 써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은 사람을 불구속 기소하자고 주장할 검사란 없을 것이다. 특경가법상 횡령·배임 액수가 50억원 이상이면 법정형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인 중형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불구속을 밀어붙였다.
검찰이 불구속 기소를 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드물다. 예상대로 1심 법원은 박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검찰이 기대했던 ‘국익’은 실현되지 않았다. 2009년 국제올림픽위 총회 유치는 실패했고, 박 전 회장은 위원 자격을 정지당했다. 검찰 수뇌부가 법률 판단보다 국익을 앞세운 것은 ‘지나친’ 나라 걱정일까, 아니면 국익을 핑계삼아 ‘재벌 봐주기’를 한 것일까?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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