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윤석열 정부 1년, 무능의 배후에서 일어나는 일

등록 2023-05-12 05:00수정 2023-05-12 21:36

[기고]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2월28일 서울 숭례문 앞에서 열린 건설노조 탄압 규탄! 반노동 윤석열 정권 심판! 건설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2월28일 서울 숭례문 앞에서 열린 건설노조 탄압 규탄! 반노동 윤석열 정권 심판! 건설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년 동안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율은 대부분의 시기에 30%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는 전체 유권자 중 32%의 지지로 권좌에 올랐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국민의 지도자, 대한민국의 지도자로 한순간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오직 그를 뽑은 지지자들만의 지도자에 머물러 있었다는 이야기다.

윤석열 정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60~70%에 이르는 시민들이 그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대통령의 무능과 자질 부족, 그리고 일방적, 독단적인 국정운영 방식이었다. 말하자면 나라와 정부를 운영할 능력은 부족하면서, 국민들의 의견을 묵살한 채 중대한 국가적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점을 다수 국민은 가장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계층 격차, 기후 위기, 인구고령화 등과 같이 긴급하고도 중대한 여러 사회문제들이 지난 1년 동안 어디서도 중점 의제로 다뤄지지 않은 채 부유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비전과 로드맵도 제시한 바 없기 때문에, 남은 4년 동안 이렇다 할 개선이 일어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우리 사회가 긴급히 대응해야 할 많은 과제가 역사의 정지화면처럼 ‘멈춤’ 상태에 있다.

하지만 윤 정부가 무능하고 무책임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라는 착각은 중요한 점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 무능의 배후에서 향후 한국 사회에 중대한 결과를 낳게 될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첫째, 한국 민주주의에 심각한 왜곡과 퇴행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 1인과 소수 측근에 권력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고, 검찰을 위시한 비선출 국가기구를 핵심 통치수단으로 하는 관료적 지배체제가 공고해지고 있다.

법치주의 없는 민주주의는 다수자의 폭력으로 변질되지만, 민주주의 없는 법치주의는 법을 무기로 한 권위주의 지배가 된다. 만약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모두 없으면 자의적이고 전제적인 지배에 가까워진다. 즉, 권력자와 집권세력의 뜻대로 국가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우리 사회에 준 역사적 교훈은 정치경쟁과 선거에 의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이라 할지라도 헌법적 가치와 법치주의를 훼손하면 권좌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부는 또 다른 교훈을 주고 있다. 즉,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사법권력의 지배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선출된 권력과 비선출 권력의 남용이 중첩되는 대단히 위험한 권력집중이다.

둘째, 한국 자본주의의 권력구조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는 소멸해도 시장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신념을 표명한 바 있다. 이것은 틀렸다. 현대의 시장제도는 현대 국가가 없었다면 태어날 수도, 성장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잡아먹지 못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조직체가 바로 국가다. 그런데 윤 정부는 아무 제약 없는 기업활동의 자유를 꿈꾸고 있다.

그 목표를 위한 핵심적 공격 대상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윤석열 정부와 보수언론, 기업가단체들은 노동자의 조직적 기반을 집요하게 공격해왔다. 레이건이나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치에서 노조에 대한 공격은 기업을 위한 좀 더 포괄적인 구조 개혁의 첫번째 조치였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의 조직이야말로 기업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 데 최대의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자의 연대를 약화시키기 위해 취한 핵심 수단은 분열 전략이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와 비노조를 이리저리 이간질하여 반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과 전략에 의해 노동자들의 권력자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약화시키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갑과 을의 힘의 관계에 구조적인 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이다.

셋째, 가장 최근에 급격히 진행된 변화는 대외관계의 측면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한두달 사이에 한-일 관계와 한-미 관계에 대단히 적극적이었는데, 그 핵심은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미-일 동맹의 종속적 파트너,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미국의 세계전략 구상을 따르는 종속적 파트너로 빠르게 편입되어 들어가고 있다.

동아시아에 지정학적 불안정이 커지고 있고 북한의 핵 위협이 더욱 실질적으로 되고 있는 가운데, 신냉전 대결 구도가 이 지역에서 고조되지 않도록 하고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중대한 과제다. 이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섬세한 전략과 국민적 합의가 중요한데, 대통령의 조급하고 독단적인 행동으로 너무 위험스러운 변화가 갑작스레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앞으로 부딪친 궁극적인 한계점은 이런 윤석열 정부의 여러 심각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현실을 타파할 정치적 대안과 신뢰할 만한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지속되는데도, 여야 어느 쪽도 신뢰하지 않는 광범위한 유권자층이 있다. 다수 국민이 정치 현실에 많은 불만이 있지만 반대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하지 못하는 교착상태에 있다. 특히 청년 세대에서 그런 유보적인 태도는 문재인 정부 후반기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2022년 대선에서는 20~30대에 보수 투표가 더 많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 이 연령대의 대통령 지지율은 10~25%로 지극히 낮다. 그런데 그 반대급부로 늘어난 것은 민주당이나 정의당 지지율이 아니라 무당파 비율이다. 한국갤럽의 4월25~27일 조사에서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응답자 비율이 20대에서 무려 48%, 30대에서 35%에 달했다. 지난 대선 때 ‘대통령감이 없다’는 응답률과 일치한다.

앞선 문재인 정부는 경제에서 평등과 공정, 정의를 표방했으나 부동산 폭등과 자산격차 심화라는 큰 과오를 남겼다. 또한 외교에서 평화와 자주, 글로벌 선도 국가를 추구했으나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변화된 국제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성찰과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윤석열 정부에 대한 규탄에만 몰두하여 반사이익을 꾀한다면 한국 정치에 새로운 돌파구가 나오기 힘들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후에 보수정치는 변한 것이 없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난의 정치에만 몰두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 길을 가는 듯이 보인다면 국민들은 이를 신뢰하고 지지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걸었던 국민적 기대의 큰 방향성을 재확인하면서, 그동안의 과오와 한계를 분명히 성찰하고 역사의 새로운 단계를 시작하는 전환점이 필요하다.

2016~17년 전 국민적인 촛불집회와 탄핵, 2018년 남북정상회담의 평화 논의의 진전 속에서 많은 국민이 큰 희망과 자부심을 품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적 무드는 완전히 달라졌다. 실망과 갈등의 상처가 도처에 있고, 어디서도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막막함이 만연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회 변화의 흐름은 마치 바다의 파도와 같이 개혁과 반동, 역동과 침체 사이를 오르내린다. 사회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고조될 때는 승리주의가 확산되지만, 하강기로 접어들면 자조와 비관이 팽배한다. 문제는 저항과 비판을 넘어서는 재도약이다. 그것을 위한 발판이 될 진지들을 찾아내고 구축하는 일이 윤석열 정부 임기의 남은 4년 동안 우리 사회의 중요한 숙제가 될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아전인수…“재판관님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요” 1.

윤석열 아전인수…“재판관님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요”

윤석열 “계엄 때 군인들이 오히려 시민에 폭행 당해” 2.

윤석열 “계엄 때 군인들이 오히려 시민에 폭행 당해”

[속보] 헌재, 윤석열 쪽 ‘한덕수 증인신청’ 기각…13일 8차 변론 3.

[속보] 헌재, 윤석열 쪽 ‘한덕수 증인신청’ 기각…13일 8차 변론

윤석열 쪽 증인 국정원 3차장 “선관위, 서버 점검 불응 안했다” [영상] 4.

윤석열 쪽 증인 국정원 3차장 “선관위, 서버 점검 불응 안했다” [영상]

공룡 물총 강도에 “계몽강도” “2분짜리 강도가 어디 있나” 5.

공룡 물총 강도에 “계몽강도” “2분짜리 강도가 어디 있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