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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어린 장손에도 밀렸던 ‘큰딸’ 제사 주재…‘장남 우선’ 판례 깼다

등록 2023-05-11 14:47수정 2023-05-12 07:17

“남녀, 적서 불문하고 최근친 연장자 우선”
설날을 닷새 앞둔 지난 7일 오전 인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에서 시민들이 미리 성묘를 하고 있다. 인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설날을 닷새 앞둔 지난 7일 오전 인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에서 시민들이 미리 성묘를 하고 있다. 인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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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제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남(첫째 아들)이 주재권을 갖는다는 기존 판례가 15년만에 깨졌다. 대법원은 여성을 배제하는 기존의 판례가 양성평등 등 변화한 법의식에 맞지 않는다며 ‘성별에 상관없이 최연장자인 자녀가 제사주재권을 가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11일 숨진 ㄱ씨의 딸 등 유족이 혼외 여성·아들을 상대로 낸 ‘유해인도 소송’에서 “장남이 제사주재자로서 유해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제사주재자는 공동상속인의 협의에 의해 정하되,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성별·적서에 관계없이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남이 제사주재자가 된다는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사망한 ㄱ씨의 유해를 혼외 여성과 아들이, ㄱ씨 부인·딸들과 상의 없이 경기도의 한 추모공원 납골당에 봉안하면서 시작됐다. ㄱ씨는 1993년 결혼해 딸 2명을 낳고 살던 중 2006년 다른 여성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 2017년 ㄱ씨가 숨진 뒤 혼외 여성과 아들은 ㄱ씨의 유해를 납골당에 봉안했는데, ㄱ씨 부인과 딸이 “유해를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민법상 제사주재자는 유해의 처리 또는 분묘의 관리 의무를 가지며 600평 이내의 묘지용 땅 등 제사용 재산도 승계받는다. 

ㄱ씨 부인과 딸은 “장남은 혼외자이며 또한 미성년자라 유해 등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부적절하다”고 주장했지만 1·2심은 기존 판례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8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동상속인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적서를 불문하고 장남 내지 장손자가,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민법에는 제사주재자를 규정하는 조항이 없어 그동안 법원은 2008년 대법원 판례를 따라왔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은 “(기존 판례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기초한 혼인·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판례에 의하면 딸들은 숨진 부모에게 아들·손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 배제된다”며 “이는 여성 상속인에 대한 차별이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은 “현대사회의 제사에서 남성 중심의 가계계승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했다. 오늘날 조상에 대한 추모나 부모에 대한 부양에서 아들과 딸의 역할에 차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젠더법 전문가인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사 주재권은 ‘본가의 장남’을 나타내는, 한국 가족 정체성의 중요한 표지였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큰 의미가 있다”며 “사회적 인식과 관행이 변하고 있는 만큼, 여성에게 차별적인 부분을 파기해 나가는 이번 판결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민법 영역에서의 불평등이 여전한데 대법원이 이런 판결을 내리는 것이 반갑다”고 밝혔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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