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의 전세사기 특별법안 철회 촉구 기자회견’이 28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열려 안상미 미추홀구피해대책위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부·여당이 지난 27일 살고 있는 집이 경매로 넘겨가면 피해자에게 우선매수 권한을 주고, 낙찰금액은 4억원 한도에서 저리로 대출해주는 내용이 담긴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안’을 발표했지만 피해자들은 ‘피해자 배제법’이라며 반발했다. 이 특별법안의 적용대상인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려면 ‘수사 개시’ ‘서민 임차주택’ ‘피해자가 다수인 경우’ 등 6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피해자들 사이에선 어떤 경우에 ‘수사 개시’가 되는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사람을 속여’, ‘재산상 이득’을 취해야 한다.
수사기관은 ‘무자본’을 (전세)사기죄 판단의 1차 기준으로 삼는다. 자기 돈으로 전세금을 되돌려주거나, 관련 세금을 납부할 여력이 없다면 남을 속이려는 고의가 있다는 논리다.
예를 들어 1억원 부동산을 매입해 세입자에게 9천만원을 받고 전세를 주는 것은 1천만원을 투입하는 ‘갭투자’로 볼수 있다. 하지만 1억원 부동산을 1억 2천만원에 전세를 주고, 2천만원의 차익을 남겨 이를 부동산 업체, 브로커들과 나눠가졌다면 이미 전세금 1억 2천만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전세사기’가 될 수 있다.
주택 계약 당시 매매가와 전세가만으로 ‘무자본 갭투기’를 판별하는 건 아니다. 이미 많은 빚을 안고 있어 부동산을 매입한 뒤 이에 따르는 종합부동산세, 취득세 등의 세금을 납부할 수 없었다면 이 역시 자기 자본으로 감당이 안되는 ‘무자본 갭투기’로 간주된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 매입 및 임대차 계약을 무더기로 했다면 사기 혐의는 더욱 짙어진다.
전세금을 받을 때부터 ‘돌려주지 말아야지’라는 마음(고의)이 없다해도
법원은 ‘나중에 전세금을 못 돌려줄 수도 있겠다’(미필적 고의)는 마음만 인정되어도 사기죄 유죄 판결을 내리고 있다.
지난 25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2단독 장두봉 재판장은 전세사기로 70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아무개(43)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하면서 “사기죄의 구성요건은 확정적인 고의가 아닌 미필적 고의로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무자본 갭투자 수익 외에는 별다른 수입이 없어,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등의 구체적인 납부 계획이 없었고 피해자에 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 계획도 없었다”고 판시했다.
거짓말까지 보태지면 사기죄 입증은 더욱 용이해진다. 인천 미추홀구와 수도권에서 아파트·빌라 등 2700여 가구의 부동산을 소유한 인천 ‘건축왕’ 남아무개씨는 거짓말 덕분에 꼬리가 잡힌 경우다. 검찰이 남씨를 재판에 넘기면서 밝힌 공소사실을 보면 남씨는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건축사업을 했기 때문에 대출이자만 월 15억원에 이르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1월부터는 보유한 부동산이 연쇄적으로 경매에 넘어가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남씨는 직원들과 함께 자신이 돈이 많고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이 많아 전세기간 보장이나 전세보증금 반환에 문제가 없다고 세입자들을 속였다.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는 부동산에 대해서도 “이자를 잘 납부하고 있으니 걱정말고, 근저당권 문제가 생겨 전세금을 돌려 받지 못하면 책임지겠다”고 임차인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남씨의 부동산이 경매에 넘어가기 시작한 건 2022년 1월이다. 검찰은 이 시점 이후 계약한 전세보증금 125억원(피해자 161명)에 대해서만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남씨가 2009년부터 건축업을 해오면서 더 많은 부동산을 소유했던 것에 견주면 일부다.
“전세사기 피해를 규명하는데 있어 수사기관의 수사 여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텐데
피해를 호소하는 모든 사례를 다 전세사기로 처벌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전국 수사기관의 전세사기 수사현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검찰의 한 인사는 <한겨레>에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보다는 전세사기에 대한 유죄 판결을 이끌어 내기 유리해진 건 맞지만 모든 피해를 사기범죄로 수사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결국 앞서 설명한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경우에만 수사가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대책위)는 지난 4월28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들의 현실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오히려 피해자들을 갈라치는 정부·여당의 ‘피해자 골라내기’ 특별법은 차라리 폐기하는 것이 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진아무개씨는 공개 발언에서
“피해자가 사기꾼이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는 걸 어떻게 입증을 하느냐”며 “피해자가 그 증거를 모으기 위해 생계도 중단하고 (다른) 피해자들을 모으고 임대인의 재산을 직접 추적해야 하느냐”고 강조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무릎을 꿇고 피해 구제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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