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공공이 보증금 반환채권(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을 매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떼인 보증금을 정부가 내달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세 사기 피해자에게만 (채무 탕감을) 해주면 전체 대한민국 신용 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는 반론에 부딪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절반만 맞는 얘기다. 특히 서울 강서구 화곡동 전세사기처럼 조세채권 외에는 선순위채권이 없는 경우, 결과적으로 세금 투입 없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 사기 피해자는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①선순위채권자(돈 받아갈 권리 있는 자)가 있는 경우 ②선순위채권자가 없는 경우다. ①번은 세입자에 앞서 돈 가져갈 권리자가 있기 때문에 세입자가 보증금을 지켜내기 힘들다. 그러나 ②번은 다르다. 선순위채권자가 없기 때문에 세입자 본인이 경매를 신청해 낙찰자로부터 보증금을 받아낼 수 있다. 물론 낙찰가가 보증금보다 낮은 경우(깡통전세)가 대다수라 부분 손실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②번 중 조세채권이 있는 경우다. 조세채권이란, 납세당국이 세금을 가져갈 수 있는 권리를 표시한 채권으로 국세인 경우 보증금보다 순위가 앞선다. 이 경우 피해자들은 정부 개입 없이는 보증금을 사실상 챙길 수 없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전세사기가 대표적인 예다.

화곡동 전세사기의 경우 ‘빌라왕’으로 불린 김아무개씨 혼자 1139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 현재 파악된 것만 보면 김씨는 63억원의 종합부동산세를 미납했다. 이 때문에 1139채 중 경매 낙찰되는 순서대로 국세청이 63억원을 가져간다. 예를 들어 각 빌라가 1억원씩에 낙찰된다면, 63채까지는 전액 국세청이 가져간다는 뜻이다. 현실에서는 이런 경매조차 진행할 수 없다. 낙찰자에게 돌아갈 배당금이 없다는 이유로 법원이 경매를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민사집행법 102조 ‘무잉여 기각’)

만약 캠코가 나설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캠코가 보증금 반환채권을 사들인 뒤 1139채를 공매에 넘기면 이론상 1채당 553만원(63억/1139채) 세금만 제하고 남은 금액을 캠코가 갖게 된다. 1건당 낙찰가액에서 533만원 제한 금액을 캠코가 손에 쥐게 되는데, 이를 역산해 캠코가 손해보지 않는 선에서 보증금 반환 채권을 깎아서 사면 캠코가 손해 볼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피해자들은 캠코가 정한 채권 할인액(보증금 손실 정도)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세채권 때문에 경매가 진행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정부도 인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제도 개선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인천 미추홀구’처럼 ①선순위채권자(돈 받아갈 권리 있는 자)가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는 경우가 다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법안에서 이 경우에도 캠코가 보증금 반환채권을 사들일 때 반값 이상은 쳐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받을 돈이 거의 없는 채권을 ‘웃돈’주고 사오도록 하는 내용이라 공적자금 투입이 전제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경우도 캠코가 향후 부동산 경기가 회복된 뒤 공매에 부치면 손해보지 않거나, 손해를 최소화할 가능성은 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최하얀 기자 ch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