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대전시 서구 둔산동 문정네거리에서 ㅂ씨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인도로 돌진해 초등학생 4명을 덮쳤다. ㅂ씨는 면허 취소 수준의 음주 상태였다. 이 사고로 배승아양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10일 오전 사고 지점에 배양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함께 분홍색 캐릭터 인형이 놓여 있다. 생전 배양은 분홍색을 가장 좋아했다. 최예린 기자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초등학생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은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지난 8일 대전 스쿨존에서 9살 어린이가 음주운전 차량에 부딪혀 숨졌다. 음주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윤창호법의 모호한 기준 탓에 해당 운전자에게 적용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경찰은 스쿨존에서 어린이를 상해·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가중처벌하는 민식이법을 우선 적용해 운전자를 구속했는데 정부는 이런 민식이법마저 ‘운전자 편의’에만 맞춰 완화하려 하고 있다. 그동안 운전자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온 입법 흐름과는 반대 방향이다.
대전 둔산경찰서는 스쿨존에서 음주운전으로 9살 어린이를 숨지게 한 운전자(66)에게 ‘윤창호법’(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위험운전 치사)을 적용할 수 있을지 추가 수사 중이라고 10일 밝혔다. 여기서 윤창호법은 2019년 시행됐다 지난해 위헌 결정이 난 재범 이상 음주운전자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제2 윤창호법)에 앞서 2018년 말 음주운전 치사상 형량을 강화한 ‘제1 윤창호법’을 가리킨다. 음주운전 사망사고더라도 윤창호법을 적용해 엄벌하려면 ‘음주 등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라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가해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취소 수준(0.08%)을 훌쩍 넘긴 0.123%였지만, 알코올농도 수치와 관계없이 운전자 상태는 제각각일 수 있어 판례상으로도 수치만 보지 않는다.
경찰은 추가 진술 등으로 가해자가 ‘운전이 곤란한 상태’였다는 점을 추가 입증해야 윤창호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날 구속된 가해 운전자는 스쿨존 사망사고 가해자를 엄벌하는 ‘민식이법’(도로교통법 및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사)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만으로 이날 구속됐다.
민식이법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대전 사고 희생 어린이도 민식이법으로 보호받지 못했다. 민식이법에는 안전 펜스(방호 울타리) 설치 의무가 없다. 관련 조항은 ‘스쿨존 어린이 보행자를 막을 수 있는 펜스를 우선 설치하거나 설치를 요청할 수 있다’는 임의 규정으로 남아 있다. 이날 국민신문고에는 ‘스쿨존에 펜스를 설치해달라’는 청원 글이 올라왔고, 검토 대상 기준인 동의 100명을 넘겼다.
정부는 돈이 드는 ‘안전시설 강화’에는 눈감은 채 운전자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민식이법을 되돌리려 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9일 ‘국민제안 2차 정책화 과제’ 15건을 발표하면서 ‘민식이법’을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보도자료에서 “2021년부터 시행 중인 속도제한 정책이 보행자 통행량, 도시 내 지역적 특성 등을 반영하지 않고 획일적·경직적으로 운영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스쿨존 내 시간대별 탄력적 속도제한 운영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현재 모든 스쿨존은 온종일 시속 30㎞로 속도가 제한된다. 어린이가 통행하지 않는 시간대에 좀 더 높은 속도로 달릴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9살 어린이가 숨진 대전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는 ‘휴일’인 8일 발생했다.
이런 정부의 움직임은 자칫 운전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억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교수는 “현재 경찰 단속도 미비한 상황인데, 규제를 완화한다는 정부의 얘기는 운전자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오히려 스쿨존에서 단속을 더 철저히 하겠다고 해야 운전자들이 경각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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