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민중항쟁과 국가폭력을 기억하는 서울대 구성원들’이 서울대학교 게시판에 붙인 대자보. 단체 제공
서울대 재학생들이 ‘제주 4·3 사건’을 무장폭동이라고 주장하는 강연자를 학내 보수단체가 초청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시위를 열기로 했다.
‘4·3 사건 민중항쟁과 국가폭력을 기억하는 서울대 구성원들’은 27일 서울대 내 기독교 근본주의를 표방한 학내 단체 ‘트루스포럼’이 주최하는 ‘제주 4·3 사건’ 왜곡 강연을 규탄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이날 저녁엔 항의 집회를 열 예정이다. 트루스포럼은 이날 저녁 6시에 학내 건물에서 영화 <탐라의 봄>를 상영하고, 김영중 전 제주경찰서장의 강연을 듣는 등 ‘제주 4·3의 진실을 알린다’는 강연회를 연다.
이들은 “(강연과 영화 내용이) 4·3 사건을 왜곡하고, 민간인 학살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는 사실에 대해 학내에서 많은 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강연 전후인 오후 5∼7시에 강의가 열리는 건물 로비에서 항의 손팻말 시위에 나서고자 한다”고 밝혔다. 행동에 나서는 구성원들은 전날 학내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여 트루스포럼을 비판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대자보에서 “영화는 4·3을 ’제헌의회 선거를 막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이 벌인 학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영화에도 등장한 강연자 김영중 전 제주서장은 대통령의 제주 4·3학살 사과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안해 ‘제주 오적’의 일인이라는 오명을 얻은 인물”이라고 밝혔다. 김 전 서장은 저서와 토론회 등을 통해 제주 4·3 사건이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려는 남조선로동당의 폭력으로 촉발된 무장폭동이었으며, 지난 2003년 정부가 채택한 4·3 진상보고서가 왜곡됐다고 주장해왔다.
학생들은 대자보에서 “당시 제주 4·3이 무장폭동이며 위급시이기에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의 학살 진압이 정당했다면, 한국전쟁 당시 저지른 보도연맹 학살, 전두환이 저지른 5·18 광주학살도 똑같이 정당화되며, 나아가서는 정권이 저지른 각종 국가폭력 사건도 정당화된다”고 했다.
이날 손팻말 시위에 참석한 서울대 대학원생 권아무개씨는 “이전 같은 경우에는 단순히 자신들의 이념을 전파했지만, 이제는 단순히 이념을 정당화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국가폭력 또는 민간에 대한 학살 자체를 정당화하는 것이어서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1절 행사에서 경찰의 발포사건과 1948년 4·3 무장봉기로 촉발됐다. 1954년 9월까지 7년 간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 충돌,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약 2만5천∼3만명의 주민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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