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어린이병원 인근에 집회‧시위 소음을 측정할 수 있는 전광판 차량이 서 있다. 경찰청 제공
경찰이 주말 서울 대규모 도심 집회에 ‘소음 측정 전광판 차량’을 처음 투입했다. 집회·시위 소음에 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적극 대응에 나선 것이다. 주최자뿐 아니라 참가자도 소음 기준 위반 혐의로 처벌할 수 있도록 강화된 규제가 국회에서 논의되는 가운데 나온 조처다. 소음을 이유로 형사처벌까지 하면 집회·시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찰은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어린이병원 입구에 집회·시위 소음을 측정할 수 있는 소음 전광판 차량 1대를 투입했다. 집회 참가자들도 소음 정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경찰청 관계자는 “그동안 기준치가 넘을 경우 주최자에게 기준 위반이라고 설명하고 고지서를 발부해왔다”며 “집회 참가자들도 소음 기준을 넘었다는 상황을 인지하는 게 필요해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혜화역 인근 대학로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조합원 1만3천여명이 정부가 추진하는 ‘주 최대 69시간’ 노동시간 제도 개편 등을 비판하며 집회를 열었다. 집회가 열린 차로와 서울대 어린이병원 본관은 직선거리로 100여m 떨어져 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시행령은 주거지·학교·종합병원 인근에서 열리는 집회·시위의 최고 소음도를 85㏈(데시벨) 이하, 10분간 평균 소음은 65㏈ 이하로 규정한다. 위반시 경찰은 기준 이하로 소음을 유지하라고 경고한다. 경고에도 소음 기준을 어기면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등의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경찰은 이날 마로니에 공원 일대에서 열린 민주노총 집회, 택배노조의 혜화역 집회,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의 무교로 집회, 촛불승리전환행동의 숭례문 인근 집회 등에서 소음이 80㏈을 넘었다며 주최자 4명을 조사할 예정이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어린이병원 인근에 집회‧시위 소음을 측정할 수 있는 전광판 차량이 서 있다. 경찰청 제공
경찰이 집회·시위에서 발생하는 소음 단속에 적극 나선 것은 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늘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삼각지역 인근 주민들은 집회·시위 소음으로 인한 불편을 호소 중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거처를 마련한 경남 양산 평산마을 자택 앞에서는 보수 유튜버들의 소음으로 마을 주민들이 몸살을 앓았다.
경찰은 지난달 24일 소음 기준을 강화하는 집시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주거지·학교·종합병원·공공도서관 인근 집회·시위의 경우, 평균 소음도 측정시간을 기존 10분에서 5분으로 단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고 소음도 위반 판단 기준도 1시간 내 3회에서 2회로 단축한다. 소음 기준을 위반한 집회 참가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집시법 개정(조은희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도 추진 중이다.
시민사회는 소음 규제의 필요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소음 규제를 위반한 참가자까지 형사처벌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법)는 “애초에 (행정처분인) 과태료로도 충분히 규제할 수 있는 것을 형사처벌하는 것이 맞느냐는 게 시민사회의 근본적인 의견”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집회를 신고한 주최자가 현장에 없는 경우, 주최자 역할을 한 참가자를 처벌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모든 참가자를 처벌하겠다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민생파탄 검찰 독재 윤석열 심판 민주노총 투쟁선포대회'에서 '윤석열 심판', '주 69 시간제 폐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박지영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