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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별정정에 성전환수술 필수?…대법원 예규 해석 제각각 [뉴스AS]

등록 2023-03-20 10:39수정 2023-03-21 02:47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소수자부모모임 등 성소수자단체 회원들이 2021년 11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성별정정 요건과 절차 국가인권위 진정’에 앞서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수술요건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소수자부모모임 등 성소수자단체 회원들이 2021년 11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성별정정 요건과 절차 국가인권위 진정’에 앞서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수술요건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에 대해 법적 성별정정을 허가한다는 법원 판단이 최근 들어 나오고 있다. 기존 대법원 예규 등은 성전환수술 여부를 성별정정 허가에 있어 주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도록 하고 있는데, 일선 법원에서 이를 넘어서는 진일보한 결정들이 나오는 셈이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재판부 재량에 맡겨진 성별정정 기준이 일관성을 갖출 수 있도록 입법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  “생식능력 제거, 성별정정 위한 필요불가결 요소 아냐”

2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일부 법원에서는 생식능력 제거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도 성별정정을 허가하고 있다. 최초의 판결은 2021년 10월 자궁적출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남성에 대해 여성→남성으로의 정정을 허가한 수원가정법원 항고심이다.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난 ㄱ씨는 남성호르몬 요법은 받았지만, 자궁적출술 같은 생식능력제거수술이나 외부성기성형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1심은 ㄱ씨가 생식능력제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성별정정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항고심은 ㄱ씨가 남성 성 정체성이 뚜렷하다는 점 등을 토대로 “자궁적출술 등을 요구하는 것은 성적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신체의 온전성을 손상토록 강제하는 것”이라며 수술 없는 성별정정을 허가했다. 앞서 2013년 11월 서울서부지법은 생식능력제거수술은 받고 외부성기형성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남성에 대해 처음으로 성별정정을 허가한 바 있는데, 이보다 한발짝 더 나아가 생식능력제거를 하지 않은 경우에도 법적 성별정정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기조는 지난 2월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나 생식능력제거를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 ㄴ씨에 대한 판결로도 이어졌다. 서울서부지법 항고심 재판부는 ㄴ씨에 대해 “성기는 신체 외관 평가의 한 요소일 뿐 (성 정체성 판단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다”라며 성별정정신청을 인용했다. ㄴ씨도 1심에서는 수술을 받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성별정정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항고심의 적극적인 판단으로 법적 성별을 바꿀 수 있게 됐다. ㄴ씨를 대리한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ㄴ씨가 호르몬요법을 오랫동안 해온 데다 가족과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 본인이 여성으로서 확고한 성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종합해 재판부가 성별정정을 허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전향적인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전환수술 여부는 재판에서 성별정정 인정 여부를 가르는 기준점이 되고 있다.

■  재판부 재량마다 성별정정 허가 기준 달라…“입법 필요”

법조계에서는 법원의 성별정정 허가가 들쭉날쭉한 이유로 대법원 판례와 예규에 대한 해석이 재판부마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2006년 6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성전환수술을 마친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성별정정을 처음으로 허가한 이후, 대법원은 이 판결을 토대로 각급 법원이 성별정정사건을 심리할 때 지침으로 삼아야 하는 예규를 마련했다. 예규에는 △성전환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는지 △생식능력을 상실했는지 등을 ‘참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어떤 재판부에서는 성별정정을 위해 수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기도 하고, 다른 재판부에선 성전환수술도 여러 고려사항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해석하고 있다. 이처럼 재판부마다 판단기준이 제각각인 탓에 성별정정 신청이 기각된 일부 트랜스젠더는 ‘판결이 잘 나오는’ 다른 법원 관할 지역으로 주소지를 옮겨 다시 신청을 넣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이에 시민사회에서는 법적 성별 정정을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별정정 허가 여부를 재판부 재량에만 맡길 게 아니라 성별정정 기준을 법으로 규정하자는 취지다. 지난해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에 대해서도 성별을 정정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김선수·오경미 대법관의 보충의견을 통해 “성전환자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해결하고 기본권의 침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성전환자와 그 가족들의 목소리가 입법을 통해 제도적으로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법원의 내부 지침으로 돼 있다 보니까 판사 재량으로 허가가 이뤄지고 있는 게 문제”라며 “관련 논의도 법원 내부에서만 돌고 있는데, 국회의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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