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가 공개된 뒤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이 드라마를 마음 편히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극중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에게 가정폭력 혹은 아동학대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친모 정미희(박지아)는 동은과 인연을 끊고 살다가 18년 만에 나타나 다시 동은을 괴롭히고 곤경에 빠뜨린다. 이때 정미희는 동은의 집 현관문을 두드리며 “주소 다 떼보고 왔다”고 소리치거나 “동사무소 가서 서류 한 장 떼면 너 어딨는지 다 나와. 어디 또 숨어봐”라고 말한다. 이 장면을 본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친족에게 어릴 때 폭력을 당한 사람들은 언젠가 가족이 주소를 떼보고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안고 산다”며 공포감을 호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극중 친모처럼 서류를 떼어 보고 집주소를 찾는 일은 막을 수 있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민등록 등·초본,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는 것을 제한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행정복지센터에 방문해 가정폭력 상담소 등에서 상담을 했던 기록만 내면 발급제한 신청을 할 수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이나 긴급 피난처에 입소한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 폭력 사실에 대한 경찰 신고 기록이나 관련 사건에 대한 법원의 확정 판결문 등을 내도 된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20년 8월 가정폭력 피해자 ㄱ씨가 이혼한 전 남편이 아이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 주소를 확인한 것이 기본권 침해라며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인 직계가족(배우자, 자녀 등)의 가족관계증명서를 자유롭게 발급을 수 있도록 규정한 법조항을 고쳐야 한다는 취지 결정이었다. 헌재 결정에 따라 후속 입법이 완료돼 지난해 1월1일부터 가정폭력 피해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 가족관계증명서 발급이 제한된 셈이다.
주민등록등·초본은 이보다 앞서 2009년부터 발급제한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첨부서류로 병원 진단서 등을 요구해 문턱이 높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주민등록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지난해 8월31일부터는 가정폭력 상담소에서 상담받은 확인서만 내면 발급제한이 가능하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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