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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산만할까. 밥을 먹으라고, ‘치카치카’를 하라고, 옷을 입으라고 골백번씩 이야기하는 게 일이다. 밥을 먹으러 오다가도 바닥에 떨어진 색종이를 보곤 그대로 주저앉아 종이접기를 하는 건 예사요, 양치하라고 보내 놨더니 세월아 네월아 함흥차사라 뭐 하나 들어가보면 화장실 입장까지 5센티미터를 앞두고 책을 읽고 앉아 있다. 책 읽자고 골백번 이야기해도 들은 척도 않더니. 속이 터진다.
물론 안다. 어린이는 주의 집중력이 약하다. 두뇌가 덜 성숙했기 때문이다. 집중하라는 잔소리를 들을 때조차 자연스레 주의가 분산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흔히 어른들은 어린이가 미숙한 존재라고 여기며, 어린이의 집중력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적 개입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를 달리 말하면, 어린이들은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셈이다. 극도로 호기심이 많고, 모든 것을 탐색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게 과연 나쁘기만 할까?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심리학과 블라디미르 슬라우츠키 교수팀은 성인 35명과 4~5살 어린이 34명을 대상으로 ‘선택적 집중력’에 관한 실험을 했다.
첫번째는 ‘변화’를 알아차리는 실험이었다. 참가자들은 각각 빨간색, 녹색 선으로 그려진 두 개의 도형이 서로 겹쳐져 있는 컴퓨터 화면을 관찰했다. 사전에 빨간색 도형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지시를 받은 터였다. 그런 다음 화면에서 도형이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 새 도형이 전 화면에서 관찰하던 도형과 같은지 답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때 새 도형은 참가자가 관찰하던 도형과 정확히 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빨간색 도형만 달라진 경우도 있었다. 또 관찰 대상이 아닌 녹색 도형만 달라진 경우도 있었다.
실험 결과, 관찰 대상이었던 빨간색 도형이 바뀌었을 때 성인의 정답률은 94.3%로 어린이(86.5%)보다 약간 더 높았다. 그러나 관찰 대상이 아니었던 녹색 도형이 바뀌었을 때는 어른의 정답률이 63.4%, 어린이의 정답률이 77.1%로 어린이가 훨씬 잘 알아채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어른들은 필요하다고 들은 것에만 집중한 경향이 있었던 반면, 어린이는 필요하지 않은 도형도 두루두루 관찰한 것이다.
두번째는 ‘검색’에 대한 실험이었다. 실험 참가자들은 몸통에 × 또는 ○ 표시가 있거나 꼬리 끝에 번개나 공이 달려 있는 여러 특징을 가진 외계인 그림을 관찰하면서 한 가지 특징을 기준으로 외계인을 찾으라는 요구를 받았다. 예를 들어, 몸통에 ×가 그려진 외계인만 골라내는 식이었다. 어린이와 성인 모두 ‘× 외계인’을 잘 찾는 편이었고, 정확도는 어린이가 74.5%, 성인이 89.2%로 성인이 약간 더 정확했다.
그러나 화면에서 외계인 그림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 참가자가 기억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몸통에 그려진 ×나 ○ 표시처럼 주의를 기울여야 했던 특징을 기억하는 데에는 성인과 어린이가 비슷한 정확도를 기록했다. 그러나 외계인의 꼬리 모양같이 기타 특징에 대한 기억 정확도가 어린이는 72%로 성인 59%와 비교해 훨씬 더 정확했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의 시선을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을 활용해 어린이들이 실험에 참가하는 동안 컴퓨터 화면 전체를 본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는 특정 물체에 집중하면 과제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때도 마찬가지였다. 연구팀은 “어린이는 어른만큼 주의를 집중하지 못한다”며 “그 결과,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차리고 기억하게 된다”고 밝혔다.
선택적으로 주의를 ‘집중’하는 성인의 능력과 주의를 보다 광범위하게 ‘분산’시키는 어린이의 능력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주의를 집중하는 능력은 회의 자리에 2시간 내내 앉아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한다. 반면 어린이는 주의력을 분산시켜 정보를 더 많이 받아들임으로써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보통 어린이가 어른보다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의를 분산시키는 덕분에 오히려 어른보다 능숙하게 숨겨진 요령이나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하는 데 능하기 때문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발달연구소는 2013년부터 다음과 같은 연구를 진행했다. 8~10살 어린이 47명과 20~35살 성인 39명을 일종의 간단한 게임에 참여시켰다. 72개의 작은 네모가 무작위로 켜지는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해당 모양이 가로세로 150픽셀인 기준 프레임에서 어느 쪽 모서리에 더 가까운지 판단해 왼쪽 또는 오른쪽 방향키로 정답을 맞히는 게임이었다.
모양을 이루는 작은 네모들은 한 번에 동일한 색으로만 표시됐고, 빨간색 아니면 녹색이었다. 참가자들은 색깔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몰랐고, 첫 게임에서 실제로 네모의 색깔은 정답과 상관없이 무작위로 바뀌었다. 하지만 게임이 여러 번 진행될수록 색깔과 정답 사이의 관련성이 높아졌다. 즉, 정답이 왼쪽일 경우엔 모양이 항상 녹색으로 나타난 반면 정답이 오른쪽인 경우엔 모양이 빨간색으로 나타난 것이다. 게임을 진행하던 참가자가 이를 알아차릴 경우, 색깔만 보고도 더 빠르고 쉽게 정답을 맞힐 수 있었다.
주의 집중력이 필요한 게임인 만큼,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정답률이 현저히 낮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앞서 설명한 색깔 전략을 발견하고 그에 따라 방향키를 누른 성인과 어린이의 비율은 각각 28.2%, 27.5%로 매우 유사했다.
어른들도 일상에서 어떤 과제를 풀 때 자발적으로 전략 변화를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흔히 ‘아하 모멘트’라고 한다. 사람들이 “아하!” 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떠올리거나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지칭하는 관용구다. 요컨대, 인지 통제의 모든 영역에서 어린이의 점수가 더 나빴지만, 성인과 거의 같은 비율로 ‘아하 모멘트’를 통해 과제 해결 능력을 개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연구를 진행한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니콜라스 슈크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어린이가 성인보다 덜 집중하고 더 쉽게 산만해지는 반면 완전히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하는 데 놀랍도록 유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앞으로 인지발달심리 분야에서 아이들의 집중력 부족보다는 창의적 과정에 대한 연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밝혔다.
과학칼럼니스트
육아를 하며 과학 관련 글을 쓴다. 과학 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