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에게 부채는 소득계층에 따라 양면적이다. 저소득 청년에게 빚은 덫이지만 고소득 청년에게 부채는 자산증식의 필수 수단이다. 연합뉴스
“친구가 청약에 당첨됐는데, 그 친구 같은 경우는 결혼식을 하고 혼인신고를 일부러 안 해 놓은 거예요. 그리고 아이가 먼저 생겼어요. 그걸로 한부모 가정으로 청약을 받았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그냥 법대로 그냥 솔직하게 에프엠(FM)대로 사는 나만 바보 되는구나. 이런 생각이 계속 드는 거죠.”(경기도 자가 거주 35살 기혼 여성 ㄱ씨)
“제가 휴직해서 들어가게 되면, 육아 휴직은 여자가 많이 손해가 있고, 승진도 앞두고 있는데 그런 것도 밀릴 것도 생각나고…연봉도 확 빠지잖아요. 저는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신랑 동의 하에” (서울 자가 거주 37살 기혼 무자녀 직장인 여성 ㄴ씨)
“저는 지금 주식도 하고 코인도 하고 원자재도 사고 엔화 투자도 하고 달러 투자도 하고, 그냥 저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직성이 풀려서 계속할 것 같고, 그냥 다양하게 계속해 볼 거 같아요.”(서울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정규직 취업자 24살의 미혼 여성 ㄷ 씨)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곽윤경 박사팀이 지난해 8월 표적집단면접(FGI)방식으로 서울과 경기도에 사는 19~39살 청년 20명을 조사한 답변 가운데 일부다. 이들은 모두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고, 제집 마련을 할지에 큰 관심을 쏟고 있었다.
27일 곽 박사팀의 연구 보고서 ‘청년 미래의 삶을 위한 자산 실태 및 대응 방안’을 보면, 이들의 자산 형성 방법은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일정 수준의 자산을 이루기 전까지 가족계획을 미루는(ㄴ씨) 것 뿐만 아니라, ㄱ씨 친구 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청약 당첨을 위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청년들 사이에서 젊었을 때 ㄷ씨처럼 다양한 수단을 통해 부를 축적해야 한다는 생각은 보편적이었다.
청년들은 자산 형성을 위해 빚을 지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정부가 청년에게 제공하는 청년 전·월세 보증금 대출, 전세자금 대출 등 다양한 대출제도는 물론, 중고차 대출, 주택청약 담보대출, 학자금 대출 등 금융권을 비롯한 민간의 갖은 대출제도 또한 자산증식을 위한 유효한 수단이라고 여겼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대출이 있거든요. 저리로 빌려주는 대출을 가지고 합하고(보태고), 나머지 금액은 회사에서도 전세대출을 무이자로 해주거든요. 그거랑 제 돈 좀 해서 (전세) 보증금을 제가 다 마련했습니다.” (부모한테서 독립해 서울에서 정규직으로 취업한 31살의 남성 ㄹ씨)
ㄹ씨 처럼 많은 청년에게 부채는 살 집을 얻거나 자산을 증식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건이었다. 청년들의 목표는 주택의 소유 여부에 따라 달랐다. 미혼의 집 없는 청년들은 모두 자기 집을 갖는 것이었고, 집이 이미 있는 청년들은 집을 더 가져 임대사업자가 되거나 상가 점포주나 건물주가 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대출을 통한 금융자산 투자 등 재테크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하지만 실업자나 취업준비생들에게 부채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금융상품이었다. 실제 민간의 많은 대출제도는 갚을 능력이 있는 정규직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보니 취업준비생이나 비정규직 청년들은 대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저소득층에 집중된 정부의 청년 자산형성 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청년도 있었다. 전 계층의 청년들이 세금을 다 내는데, 저소득 계층 청년들만 지원해주는 것은 형평성과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견해가 대표적이다.
“제도를 봤는데, 차상위 계층 이런 거를 충족을 해야 하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그냥 평범하게 사는 그런 중산층도 진짜 입에 풀칠만 할 뿐이지 돈을 그렇게 많이,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넓게 해서 모든 청년이 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서울 거주 취업준비생 25살 ㅁ씨)
청년들은 금융지식을 숙지하도록 돕는 여러 경제교육을 제공하거나 비정규직 미혼 청년과 무주택 기혼 청년 각각에 맞는 현실성 있는 대출 정책을 마련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곽윤경 박사는 “청년 자산형성 지원 정책의 경우, 청년의 첫 직장 근속 기간은 약 1년7개월로 짧은데, 현재 한 직장에서 2년 혹은 5년을 조건으로 하는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는 정책을 펴고 있다”며 “청년의 경제활동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자산형성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한편 부채와 주택 및 고용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정책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곽 박사팀은 2012년부터 2021년까지의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원자료를 바탕으로 19~39살의 청년가구주의 부채와 자산 현황을 분석했다. 그 결과, 청년가구주의 73.45%(2021년 기준)가 빚을 지고 있었다. 평균 부채액은 1억1511만원으로 나타났다. 부채가 없는 청년을 포함한 전체 청년의 평균 부채는 8455만원이었다. 여기서 부채는 임대보증금을 제외한 금융부채를 가리킨다. 부채 원인으로는 집 마련을 위한 대출이 가장 컸고, 부동산이나 금융자산 등 이른바 ‘빚투’도 적지 않았다.
부채의 위험 수준을 살피는 지표인 소득대비 총부채상환비율(DTI)이 300% 이상인 청년 가구주는 2021년 기준 21.75%였다. 또다른 위험 지표인 소득대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0% 이상은 25.78%, 자산 대비 부채비율(DTA) 300% 이상은 16.72%로 나타났다. 이 세 가지 부채상환위험 지표에 모두 해당하는 청년가구주 가구는 4.77%로 나타났다. 2012년에는 이 비율이 2.79%였다.
자산(부채를 포함한 총자산액) 규모는 2012년 2억2675만원에서 2021년 3억5624만원으로 약 1.6배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이런 상승은 소득계층별로 달랐다. 소득 5분위(고소득층) 청년 가구의 자산 규모는 2012년 4억6671만원에서 2021년 8억81만원으로 172%의 상승률을 보였지만, 소득 1분위(저소득층) 청년가구의 자산 규모는 2012년 5008만원에서 2021년 9281만원으로 추정됐다.
이창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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